Page 54 - 전시가이드 2025년 12월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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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Still Blooming I, II, III









                            2025. 12. 9 – 12. 23 학고재아트센터 T.02-720-1524, 삼청로 50)





         Veil
                                                        않는 세계를 향한 조용한 확신이자 어둠을 통과해 빛에 이르는 믿음의 여정
        김근정 개인전                                         그 자체임을 이번 전시를 통해 고요하게 전하고자 한다


                                                        작품 'Still Blooming I·II·III'은 강렬한 붉은 배경 위에 흩날리는 꽃잎 형태로

        글 : 김근정 작가노트                                    한국의 전통성과 현대적 감수성을 절묘하게 융합한 조형 언어를 보여준다. 작
                                                        가가 선택한 붉은 화면은 강렬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화면 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신의 세계, 빛      체에 퍼져 있는 형형색색의 꽃잎들은 단순한 장식성을 넘어서 자연의 생동감
        과 어둠을 가르는 막을 상징하는 단어로 나는 ‘Veil’을 선택했다. 내가 사용하   과 시간의 흐름을 암시한다. 꽃잎은 화면 곳곳에 군집으로 모이거나 흩어지
        는 실크의 물성 또한 이 개념을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드러내는 매        며 유동적인 구성을 이루는데, 이는 실크 특유의 물성과 질감을 극대화해 생
        개라고 믿는다.                                        명력과 회복, 새로운 시작이라는 긍정적 메시지를 암시한다.
        지난 전시까지는 Story of Ten—십장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생명성과 영    꽃잎의 반복적 패턴과 다양한 색의 조화는 전통적 소재인 꽃을 현대적 시각
        속성을 꿈꾸는 방향으로 작업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더 깊은 내면으로 들        에서 재해석한 결과이며, 각기 다른 색상은 생명의 다양성과 감성의 풍요로
        어가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을 마주하고 이를 넘어서는 과정을 탐구했         움을 상징한다. 붉은 바탕과 핑크, 보라, 흰색 등이 조화를 이루며, 간혹 녹색
        다. 어둠의 장막 바로 너머에는, 물질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에도 영혼이 조      이나 금빛의 점유로 화면에 리듬과 긴장감을 더한다. 이러한 배열은 마치 시
        용히 빛나는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 세계는 훨씬 광대하며, 끝이 없으       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꽃잎의 춤처럼 관객의 시선을 이끌며, 특유
        며, 우리의 감각 너머에 있으나 분명히 실재한다. 나는 믿음을 ‘보이지 않는 세    의 서정성과 치밀한 평면 구성이 돋보인다.
        계를 인정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태도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붙들어야 할 가장 근원적인 가치라고 여긴다.                     김근정 작가는 한국회화의 뿌리인 색채와 재료의 탐구, 그리고 반복되는 작은
        이번 작업에서는 실크를 자르고, 오리고, 태운 뒤                     요소들을 통해 한국적 정신과 정서를 현대인의 삶에 맞춰 새롭게 재건해내고
                                                        있다. 'Still Blooming' 연작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현재 진행형의 생명력
        염색된 실크 캔버스 위에 다시 콜라주(collage)하였다. 태워진 실크 조각을 회  과 한국의 집단적 기억, 희망을 상징하는 대서사로 해석할 수 있다. 치밀한 구
        복시키듯 다시 붙이는 행위는 소멸의 순간이 곧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성과 서정적 힘, 그리고 한지의 독특한 물성이 조화를 이루어 동시대 미술이
        이어지는 시작점임을 말하고자 한 시도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결국, 보이지       지향해야 할 깊이와 감동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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