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전시가이드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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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iversary about the Memories-145_2017_  작품 설치 장면과 도면. 236 Silent Propagations_2022_
                                  powder coating on steel_235(h)x190x190cm  urethane coating on stainless steel_500(h)x250x800cm

               구성된다. 여기에는 적합한 재료, 국제적인 생산 규격, 효율적 구조와       하게 느꼈던 작품이다. 그만큼 이 무광 검정의 분체도료로 된 오브제는 강렬
               체결 방식 등이 기본적으로 완결되어야 한다. 설계 도면은 세상과 소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념관의 제단 옆에 필수적으로 존재하는 제의
               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용 기물처럼 개성을 강탈당한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해서 호기심을 자아낸
                                                            다. 작가는 말한다.
            여러 비평가가 김병호 작가의 작품 특징에 대해 언급했지만 개인적으로 또
            다른 특징을 꼽자면 공간을 점유하는 전통적인 입체 조형물에 충실하면서            이는 기억에 대한 일종의 기념비로, 오랫동안 문명이 만들어낸 기억
            도 대량 생산되었다는 것을 오히려 드러내면서 제의적(祭儀的)으로 읽히게           의 방식을 오마주한다. 작품의 실루엣은 과거 기억에 대한 유추를 일
            하는, 즉, 서로 낯선 요소들이 얽히면서 익숙하게 만드는 그런 ‘상반성’이다.       으키는 그림자 역할을 하며, 현실의 시스템 안에서 갈등, 반항, 의심하
            박윤정(소마미술관 책임큐레이터)이 언급한 ‘공감각의 변주’에서 변주는 상          는 자아를 기념한다.
            반성과 다름 아니다. 대형 설치 작품의 경우 실제 제작은 대부분 공장에 맡길
            수밖에 없는데, 이는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으며 나 또한 작가의 수공을 작      예전 작가와의 인터뷰 때 외부 대형 조각품의 설치를 위한 중국 프로젝트를 진
            품에서 눈으로 확인하는 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       행 중이라고 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중국 상해 판용천지 상징물>(Panlong
            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며 어디를 향하는가에 집중한다. 그동안 ‘물질과 비물       Tiandi, Shanghai, China) 프로젝트로 선보이는 ‘236개의 조용한 증식’(236
            질’, ‘영역을 넘어선 협업’, ‘감각의 집합’, ‘확장성’ 등이 작가의 작품이 지닌 특  Silent Propagations)이다. 현재 중국은 COVID-19로 인한 봉쇄령으로 모든
            징으로 언급되었지만, 그 너머 ‘공동체’, ‘관계’, ‘제의’ 등도 깊게 연관되어 있음  업무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완성된 모습으로의 공개를 위해서는 조금 더 시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간이 필요해 보인다.

            2021년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 바 있는 ‘기억을 위한 기념일’(2017)은 영원   그동안 이 컬럼을 통해 작가의 ‘Horizontal Garden’(2019년 11월호)과 ‘매개
            히 복제되어 증식되고 퍼져나가는 작가의 작품들이 지닌 대표적인 특징들          기억’(2020년 3월호)을 선보인 바 있다. ‘Horizontal Garden’(2019)에서는 수
            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조금 독특한 기운을 내뿜는 단독 조각품이다. 처음       많은 개체들이 시스템의 구성 요소로서의 역할을 정확히 하고 있으면서도 그
            마주하자마자 블라디미르 예브그라포비치 타틀린(Владимир Евграфович    질서 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존재하는 것이었다면, ‘매개기억’(2016)에서는 종
            Татлин/1885-1953/러시아)의  ‘제3  인터내셔널  기념탑’(Tatlin’s  Tow-  교, 민족, 정치, 신분, 사상, 빈부격차를 초월하여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매
            er/1919)이 연상될 만큼 이 작품은 이렇게 작아서는 안되는, 원래의 원대한    개로서 서로에게 관계성을 지니는 모듈의 조합을 상징하여 보여준 것이었다.
            꿈에 따라 건축으로 구축되어 시간에 따라 회전하기도 하면서 역동적인 사         이번 중국 선양 chi K11 Art Space에서의 전시는 야외에 설치된 작품과 함께
            회에 대한 열망을 가시적으로 실현시키는 구조물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강          작가에 대한 이해도를 드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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