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전시가이드 2023년 09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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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 소요유逍遙遊 60.6x90.9cm Color ink on Korean paper 2022 Here - 소요유逍遙遊 80x60cm Color ink on Korean paper 2023
미하게 스며 있는 듯 느껴진다. 현재, 바로 ‘여기’에만 집중하면서 그 우연성에 어울리는 점이나 작은 원을 반
복해서 그린다. 그렇게 어떤 목적이나 목표 없이 ‘지금-여기’에서 행하는 행위
이렇듯 작가에게 점은 구상에서 추상으로 가는 징검다리며, 전통에서 현대로 를 즐기며 반복했을 때, 작품은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목적 없이(우연성) 삶
가는 통로다.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표현이 만나는 공간이고, 예술과 기억이 그 자체에 집중하는 태도, 이것은 작가가 추구하는 ‘소요유(逍遙遊)’의 태도다.
압축된 세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 것이리라. “너무
나 작기도 하지만 무한한 존재이다.”(작업노트) 소요유와 목적 없음의 목적
우리는 <Here-소요유逍遙遊>라는 작품 제목을 통해 작가가 추구하는 작업
무(無)와 새로움 : 죽음과 삶의 초월 방식과 태도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삶의 방식도 알 수 있다. 작가는 ‘지금-여
이영숙은 매일 반복되는 여유 없는 삶과 반복해서 점을 그리는 상황을 마주할 기’에서 현실 세계에 얽매이지 않은, 초월한 삶 그 자체를 살아가길 꿈꾼다. 이
때 불현듯 회의감이 밀려든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삶과 행위에서 허무함을 느 것이 삶을 살아가는 소요유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현실 세계의 어떤 인위적
끼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허무한 상태가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 진입했을 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삶을 수단으로 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소요유
때 변화가 발생한다고 본다. ‘무’는 아무것도 없기에 새로운 희망의 공간을 열 는 매일 반복되는 삶이라도 그 삶 자체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임을 일깨워 준
수 있다. 작가는 반복이 회의감을 가져오고 허무를 느끼게 하지만, 그 허무는 다. 작가는 어떤 형상을 그리기보다 소요유의 태도로 현재의 순간(‘여기’) 그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로 전환될 때 새로운 것이 창조될 공간을 연다고 말 리는 점이나 작은 원에 집중한다. 이로써 현실 세계를 초월하여 ‘절대 자유의
한다. 이것이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임”을 깨닫게 되는 지점이다. 바로 작 세계’로 몰입하게 된다.
은 점(죽음)이 무한한 존재(삶)일 수 있는 가능성이며, 반복된 행위가 허무(죽
음)를 불러오지만, 새로운 창조(삶)의 계기인 것이다. ‘소요유’는 노자의 ‘무위이무불위(無爲⽽無不爲)’, 즉 ‘도는 항상 작위(作爲)함
이 없지만, 이루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과 그 맥락이 맞닿아 있다. 인위(人爲)
우리가 삶의 ‘반복’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은 우연성(예측 불가능성)을 긍정하 를 가하지 않는 반복은 그 자체가 이미 성취한 것이다.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한
며 끊임없이 새로 생성되는 현재(‘여기’)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것을 목적(무불위)을 위해 목적을 없앤다(무위). 이것이 ‘절대 자유의 세계’의 원리
작업의 방식으로 끌어온다. 최근 작가는 물감이 자연스럽게 퍼져 나가는 아 다. 따라서 우연성을 따라 한 획 한 획 점을 찍고 원을 그리는 작가는 그리는
크릴 푸어링(acrylic pouring) 기법으로 초벌 표현을 한 후 그 위에 그와 어울 그 행위 자체로 절대 자유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때 작가는 아직 완성되
리는 색상의 점이나 작은 원을 반복적으로 그려 화면 가득 채우는 작업을 선 지 않았지만, 이미 완성된 작품과 마주하게 된다. 이영숙은 ‘이미’과 ‘아직’ 사
보이고 있다. 자연스럽게 퍼져 나가는 물감의 ‘우연성’을 토대로 하여 순전히 이에서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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