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0 - 월간사진 2017년 11월호 Monthly Photography Nov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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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최종_월간사진 2017-10-23 오후 4:23 페이지 3
[ 사진, 바라봄과 알아봄 ]
저서인 <좋은 사진>에 “명기를 만드는 것은 브랜드 가치가 아니라 사진가와 함께한 물리적 시간
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요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표현이다.
기존 인터뷰에서 RX1RⅡ를 ‘명기’라고 표현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RX1RⅡ가 우리 시대 첫 번째 디지털 명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했던 말이다. 명기는 시간과
시대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다. 아날로그 명기가 라이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라이카는 절대 사진가를 편하게 놔두지 않는다. 대상을 충분히 바라보고, 사유하고, 성찰하게 한
다음 이를 사진으로 표현하게 만든다. 사진가를 ‘바라봄’과 ‘알아봄’의 영역으로 동시에 끌어들이
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디지털 명기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최신 카메라들이 경쟁적으로 내세우는
빠르고 정확한 촬영은 ‘바라봄’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진짜 명기는 호흡이 짧을 수 없다.
사진은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혹자는 기술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사진의 역사는 기술의 역사가 절반, 표현의 역사가 절반이다. 카메라가 표현의 영역을 확장했고,
새로운 표현에 대한 욕구가 기술의 발전을 이끌었다. 카메라는 바라봄의 영역, 표현은 알아봄의
영역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술적인 측면에선 바라봄의 영역이, 예술적인 측면에선 알아봄의 영역
이 전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사진이라는 매체가 존재하는 이상 이 둘의 영역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바라봄의 영역이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장한나가 만족스러운 예
술적 표현을 위해 명기(첼로)를 선택하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스냅사진에도 적합해 보이는 RX1RⅡ의 스펙에서 시작된 궁금증이다. 최근 스냅사진을 즐기는
젊은 층의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회가 너무 경직돼서 스냅사진 붐이 일고 있는 듯하다. 미술에선 붓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자유
롭게 표출해왔다. 그런데 사진에서는 기껏해야 자화상을 찍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부끄
러움 때문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셔터를 눌렀다. 이제야 카메라가 자신을 바라보고, 또 표현하는
도구가 된 것 같다. 그만큼 카메라가 친숙해졌고, 그만큼 렌즈 앞에 서는 것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경제, 문화, 예술의 메인스트림이 변하는 것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새로운 문화는 ‘발견-경악-적
응’의 단계를 거친다. 현재 갖고 있는 지식으로는 자유분방한 스냅사진을 이해하는 게 벅찰 수도
있다. 마음으로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
공부를 많이 했다고, 또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젊은 작가 사진을 이해하는 게 어려워
졌다. 예전에는 사진가의 작품세계가 지식의 틀 안에서 파악됐지만, 20~30대의 사진은 이상하게
도 불가능했다. 공부 외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게 먼저인 것 같았다. 20년간 손 놓고 있던 사
진을 다시 찍게 됐다. 작업보다는 카메라로 세상을 경험하겠다는 의미가 더 컸다. 블로그와 SNS
도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위해서다. 스스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
낀다. 예전에는 먹방을 증오했다. 그런데 얼마 전 흑돼지 김치찌개가 앞에 있으니까 사진 찍고 싶
은 욕구가 생기더라. 세상에 내가 이렇게까지 변하다니. 그래도 셔터까진 누르지 못했다.
사진 평론가로서 타인의 사진을 이야기하는 기준이 사진가로서 사진을 찍을 때도 똑같이 날카롭
게 적용된다고 생각하는가?
철저히 다르다. 평론은 이성적인 행위다. 논리와 규범이 앞선다. 이성적으로 ‘찌르는’ 사진을 좋아
한다. 사진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사진에 드러나야 한다. 반면, 내가 찍는 사진은 ‘밤에 쓰는 일
기’ 같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사진이다. 특별한 기준이 없다. 감성적으로 ‘흔드는’ 요소들
을 만날 때 눈길이 간다. 평론가(혹은 사진 스승)가 찍은 사진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면, 사람들
은 지레 겁부터 먹는 것 같다. 철학이 없으면 글자 하나, 음표 하나 쓸 수 없는 문학·음악과는 달리,
사진은 유(有)의 예술이다. 눈에 보이면 찍으면 된다. 사람들은 유(有)의 예술을 한다면 뭔가 노하
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순종적일 수밖에 없다. 청출어람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 그저 스승을
먹여 살리기만 한다. 평론가(혹은 사진 스승)가 자신의 작업을 선보일 땐 ‘링 위에 올라간다’는 자
세를 가져야 한다. 권위를 내려놓고 오로지 사진으로만 이야기하겠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한국 사진계에서 본인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진 문화를 밑에서부터 업그레이드 하는 것. 그동안 전업 사진가와 아마추어 사진가의 간극을 줄
이기 위해 노력했다. 아마추어 사진가부터 시작해 기획자, 평론가를 두루 거쳤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상향평준화로 융합된 한국의 사진 문화를 만드는 게 목표다. 당분간은 사진을 향한 열망
이 뜨거운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눈높이를 올리는 데 주력할 것이다. 사진 평론가 진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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