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월간사진 2018년 11월호 Monthly Photography Nov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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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최종_월간사진  2018-10-22  오전 9:32  페이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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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 보고서



                       다양한 동시대 문명을 조명하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 중이다. 작가 135명의 작품 300여 점으로 구성된 대규모 사진전이다.
                                         국내 작가로는 KDK, 김태동, 노상익, 노순택, 정연두, 조춘만, 최원준, 한성필이 참여한다.
                                                               에디터 | 박이현 · 디자인 | 서바른









               “문명은 거대한 단어다. … 우리가 지어놓은 것에 어떤 영향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 지         편에 사진 내용에 대한 힌트가 되는 텍스트들이 적혀 있는 게 인상적이다. 덕분에 오로
               어질 것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 칸디다 회퍼           지 이미지로만 교감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들을 거쳐 지나간 전시는 유전자
               “나는 사진이 목격의 기록이라고 보지 않는다. 나는 사진이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던          조작 생물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사진(로버트 자오 런후이), 구경 500m 망원경을 담은
               질 때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 미켈레 보르초니                           사진(미하엘 나야르) 등이 있는 ‘다음’ 섹션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전시는 직관적이다. 과거로부터 시작돼 미래로 이어지는 비교적 단순한 구성이기 때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사진전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이다. 다만, 과거보다는 현재를 반추해 미래를 내다보겠다는 목적의식이 더 강해 보인
               에 참여한 사진가의 글이다. 이번 사진전을 축약해서 설명하는 데 이만큼 적절한 표현           다.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 건 작품 수가 너무 많아 산만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점. 물
               도 없을 것이다. 전시는 1990년대 초부터 25년간 형성되어 온 지구의 문명을 조망하         론, 이것이 여러 개의 파편들로 구성되어 있는 현대 사회를 표현하는 것일 수도, 문명에
               고, 사진가의 눈을 통해 본 ‘문명의 현재’와 문명의 렌즈를 통해 본 ‘사진의 현재’를 동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빗댄 것일 수도 있지만, 시각적 피로감을 유
               시에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곳에서 사진가는 “미래는 어디에서 출발하며           발시키는 건 사실이다. 더욱이 구조물 내 사진들은 강약의 조화라기보다, 강과 강이 부
               어디로 우리를 데려갈까?”라는 질문만 던질 뿐, 그 답을 찾는 건 전적으로 보는 이의 몫        딪히는 느낌이다. 쉴 틈이 없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 집중과 휴식을 반복해야만 개별 섹
               이다. 위의 글과 일맥상통하다. 전시는 총 여덟 개의 섹션 - 벌집, 설득, 탈출, 통제, 따로    션이 말하는 내용과, 섹션과 섹션의 상호작용을 읽어낼 수 있다.
               또 같이, 흐름, 파열, 다음 - 으로 구성된다. 각 섹션은 도시 유기체, 미디어가 만들어 낸     그렇다면 왜 ‘문명’일까. 세련된 사회가 하나씩 축적되고 있는 문명은 인류가 달성할 수
               설득의 방식, 21세기에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세상 등을 말한다.                     있는 가장 높은 삶의 양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앞으로 문명이 어떻게 변화할지 정확히
               전시장 입구에서 처음 마주하는 작품은 토마스 스트루스의 <페르가몬박물관1>과 리하            예측하지 못한다. 미래학자 제임스 마틴은 “이번 세기에 처음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멸
               르트 데 차르너의 <무관심 속의 공존>이다. 벽면에 나란히 배치된 이들은 섹션이 아닌          종 위기를 맞았다.”라고 말한다. 이는 인류를 위한다는 최첨단 기술이 되레 인류의 삶
               인트로(Intro) 역할을 한다. 현대적인 미술관 내에 전시되어 있는 고대 건축물을 촬영        을 옥죄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글로벌이라는 이름 아래 외적으로는 집단적인 삶의
               한 스트루스의 작업은 ‘과거 문명 속에는 현재의 우리에게 전달할 무언가가 있다’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분열과 갈등을 겪는 것이 우리에게 옳은 길인지도 짚
               메시지를 전한다. 반면, 고대 유적(무덤)과 현대 기술(전신주)을 함께 담은 데 차르너의        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이 있다.
               작업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무관심한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꽤나 묵직한 구         전시에 참여 중인 사진가들은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일하고 노는지,
               석이 있다. 시간의 연속성과 단절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진은 오늘날          우리의 몸과 물건과 생각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협력하고 경쟁하는지, 어떻게
               문명을 둘러싼 상황을 함축적이지만, 명확하게 보여준다.                           사랑하고 전쟁을 일으키는지’ 등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들은 이러한 21세기 초 문명
               인트로를 지나 ‘원형전시실’ 앞에 서니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우주선 내부를           상황에 대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화두를 던지려는 것일까. 그렇다
               연상케 하는 흰색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최첨단 문명의 최대치를 보는 것 같다. 그          면 이런 질문을 마주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새롭게 구성된 집
               안에는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듯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구조물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          단 안에서 살아가는 세련된 방식을 생각해보는 것 아닐까. 갑자기 수많은 사진들의 향
               고 그 사이사이에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독특한 디스플레이도 눈에 띄지만, 작품 뒤          연이 끝없이 줄지어 있는 질문들처럼 느껴지는 건 분명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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