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월간사진 2018년 9월호 Monthly Photography Sep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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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11)컬처-재생공간(2p)OK_월간사진  2018-08-21  오후 8:38  페이지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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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비축기지

                                                                           상암동 매봉산 자락을 거닐어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산 속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몇 개의 탱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1973년 석유파동으로 인해 국
                                                                           내 경기가 어려워지자 유사시를 대비하는 목적으로 1978년 만들어진 것들이다. 당시
                                                                           서울 시민의 한 달 유류 소비량인 6,907만 리터의 석유를 저장했던 이 ‘석유비축기지’
                                                                           는 지난 40년 동안 일반인의 접근과 이용이 통제됐지만, 지금은 ‘문화비축기지’로 변
                                                                           신해 운영되고 있다.
                                                                           마포 석유비축기지는 건설 당시부터 1급 보안시설이었다. 이처럼 철통 보안을 유지하
                                                                           던 이곳은 ‘2002 한일 월드컵’을 위한 월드컵경기장이 착공되면서 안전상의 이유로
                                                                           2000년 11월 폐쇄된다. 실상은 10년 넘게 방치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던 2013
                                                                           년 서울시가 이곳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하기로 결정하면서, 석유비축기지는 문화
                                                                           를 비축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 서울 시민 품에 안기게 되었다.
                  01                          02
                                                                           이곳은 축구장 22개와 맞먹는 부지 위에 예전 모습을 간직한 탱크 1개와 복합문화공
                                                                           간으로 개조한 탱크 4개, 기존 탱크를 해체해 재활용한 커뮤니티 센터 등으로 구성돼
                                                                           있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기존 자원들을 재생하고 재활용하는 도시재생 방식을 유류
                                                                           탱크들과 내외장재, 옹벽 등에 적용했다는 것. 뉴욕 애플스토어를 닮은 파빌리온과 기
                                                                           존 탱크의 철재를 제거해 만든 공연장, 탱크 상부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몽환적
                                                                           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이 특히 인상적이다. 게다가 여기에 ‘친환경’ 방식까지 도
                                                                           입, 기지 내 모든 건축물은 지열을 활용한 신재생에너지로 냉·난방을 해결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는 공연과 전시는 물론 밤도깨비야시장, 야외 클럽 등 다양한 문화프로
                                                                           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비축기지’를 둘러본 뒤 주변 공원 등을 산책하는 것도 좋
                                                                           다. 방문을 원한다면,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 주차공간이 협소
                  03                                                       해 주말 낮에는 주차하기가 꽤나 번거롭기 때문이다.
                  01석유비축기지를 리모델링한 문화비축기지 02전시, 워크숍 등을 위한 다목적 공간 ‘파빌리온’
                  03‘문화마당 달시장’ 야경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평화문화진지
                      분단의 아픔이 서린, 서울로 들어오는 북쪽 길목에 문화예술 창작공간이 생겼
                      다. 이 지역은 6.25 전쟁 때 북한군이 탱크를 몰고 남침을 감행했던 곳이다. 이
                      후 남한은 1969년 이곳 ‘마들로 932’일대에 북한군 재침략에 대비한 약 250m
                      길이의 군사시설을 짓는다. 바로 ‘대전차방호시설’이다. 1층에는 군사시설이,
                      2~4층에는 주거공간인 시민아파트가 들어선 독특한 구조였다. 군사시설을 민
                      간시설처럼 보이기 위함이었다. 비상시에는 건물을 폭파해 서울로 진입하는 길
                      을 차단하겠다는 목적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2004년 시민아파트는 노후되어
                                                                                                                               01
                      철거되었지만, 1층 군사시설은  도시 미관을 저해하는 흉물로 방치되다 2016
                      년 12월 지금의 ‘평화문화진지’ 모습을 갖추게 됐다.
                      기존 벙커를 제외한 시설을 예술가와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편했다. 시민동
                      과 창작동, 문화동, 예술동, 평화동 다섯 개로 나뉜 공간은 예술가들의 창작 공
                      간과 전시장, 공연장, 플리마켓 등으로 활용된다. 또한, 주변 환경을 한 눈에 내
                      려다 볼 수 있는 20m 높이의 전망대도 있으며, 독일 베를린시로부터 제공받은
                      세 점의 베를린 장벽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그래피티로 채워진 장벽 앞을 걷
                      다 보면 ‘갈라진 이들이 서로 마주보고 손잡을 날이 속히 오기를 희망한다.’라
                      는 문구를 보게 되는데, 자꾸만 발길을 붙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분단을 향
                      한 애잔한 마음을 도저히 금할 길이 없다면, 평화문화진지를 나와 바로 옆 창포
                      원을 방문해보길 바란다. 녹음이 우거진 길을 걷다 보면, 이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옥에 티는 지하철역에 별다른 안내 표시가 없다는 것. 도봉산역 1번 출
                                                                                                   02                          03
                      구로 나와야 길을 헤매지 않는다.                                    01대전차방호시설을 리모델링한 평화문화진지 02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 03세 점의 베를린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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