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제삼의 만남 58호 [창립70주년 특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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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 ❙ 찬송가 해설
감독파 교회 목사 에드워드 페이슨의 남매 가운데 다섯 번째로 출생하8
였다 그의 가정은 철저한 청교도 신앙가정으로서 복음주의적 신앙으로 .
박애정신과 선교열정이 넘치는 가정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어려서부터 감.
수성이 예민하고 예의바르고 동정심이 많은 아이였다 이런 그의 성품이 .
그로 하여금 아동문학가가 되게 하여 어린이 서적은 물론 가정과 친구, ,
들에게 보내는 따뜻하고 희망적인 책을 내는데 도움을 주었다. 1838 년
그는 자기 집에 조그마한 여학교를 개설하고 안식일학교 학급 을 운영「 」
하기도 하였다. 2 년 후 버지니아의 리치몬드로 이사하여 소녀 기숙학교 , ,
사감이 되었다. 1845 년에 엘리자베스는 절친한 친구의 오빠인 조지 프렌
티스와 결혼하였다 그들은 매사추세츠의 베드포드에 정착하여 남편은 . ,
남( )南 삼위일체교회 담임목사가 되어 교구 성도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
었다 자녀도 낳았다 그러나 . . 1856 년 심한 전염병이 유행할 때 갓난아기,
와 살배기 아기를 잃고 망연자실해 있던 프렌티스 부인은 청교도 전통4 ,
의 깊은 신앙과 주님 사랑으로 이를 극복하고 시를 썼다 찬송가 작곡가 .
하워드 돈이 이 시에 아름다운 곡을 붙여 , 1870 년 주님 더욱 사랑 합, 「
니다 라는 곡명으로 발표하였다.」
2. 369 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 )
작사자 조셉 스크라이븐은 1819 년에 영국 아일랜드의 시패트릭에서 ,
태어나 온타리오주 포트호프에서 세상을 떠났다 트리니티 대학을 졸업한 .
후 약혼녀가 결혼 전날 물에 빠져 죽자 1846 년 캐나다 온타리오로 이민
하였다 거기서 우드스톡과 브랜트 포드에 있는 펜겔리 집안의 가정교사.
를 하였다 거기서 펜겔리의 친척인 엘리자 로쉬를 만나 약혼하는데 이 .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엘리자도 결혼을 며칠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두 , .
번째 약혼녀마저 죽자 스크라이븐은 플리머스형제단에 들어가 노인들을 ,
돌보며 여생을 살았다 이 찬송은 그 시절에 작사하여 아일랜드에 계신 .
어머니가 중병을 앓는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안타까운 마음에 쓴 시였다.
작곡자 찰스 콘버스는 미국 매사추세츠의 워렌에서 1834 년에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