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인천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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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는 창설된 지 불과 1년 뒤인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이
                                발발하자 장항·군산·이리 지구에 투입되어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고,
         1950.  9. 15





                     귀신잡는 한국 해병의 탄생





                                   통영상륙작전에서도 연전연승하였다.  마산·진해·부산으로 직접  공격하는 것이  곤란해진 북한군은  통영반도를 선 점령 후 거제도를 거쳐 마산항과 진해만을 차지하는  계획으로 변경했다. 이에 해병대 김성은 부대는 거제도에 상륙하여  통영으로부터 거제도로 침투하려는 북한군을 막아내라는 손원일  제독의 명령을 받고 1950년 8월 17일 새벽, 거제도 동북방 장평리에  도착하였다. 이후 유리한 거점을 확보한 후 북한군의 수차례 공격을  막아내고 통영시내 소탕작전을 벌여 북한군을 완전히 소탕하였다. 우리 국군만의 독립적인 작전이자 창군이래 최초의 상륙작전으로  적 사살 469명, 포로 83명이라는 전과를 올렸으며 전사자는 불과  19명에 불과한 거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이로인해 낙동강 방어선 측후방의 위협 제거 및 해군 기지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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