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인천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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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에는 미 육군 원수가 되었다. 종전 후 점령군 사령관으로 활동시 일본 왕과 둘이서 함께 찍은  사진은 패전 후의 일본인의 자존심과 저항의식을 완전히 상실시켰다.  •  6·25전쟁, 한반도와의 인연을 맺다  6·25전쟁 직후 급박한 상황을 확인하고는 자신의 재량권으로  최대한 많은 전투력을 투입하여 한국군의 급격한 붕괴를 막기도 했다.  UN군 총사령관으로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상륙작전으로 평가받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군인으로서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인천상륙작전 이후부터  오판으로 1950년 겨울의 대참패에  일조했다. 38선을 넘으면 중국이 개입할 것이라는 거듭된 경고를  허풍으로 치부했고, 중국이 설령 참전한다 해도 미군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하며 만주 폭격을 주장하는 등 확전을 우려한  워싱턴 수뇌부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인천상륙작전                                     보여주기도 했다.  •  몰락, 파면 그리고 은퇴  파면당하고 만다.  라는 명언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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