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인천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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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9. 15
성 6·25전쟁이 개전된 이래 북한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갔지만, 그곳에서 전선이 고착되었다. 북한군은 길어진 보급로와 계속되는 전투, 특히 전쟁 초기 제공권을 상실하고 미군의 폭격으로 당시 북한군이 낙동강전선에 투입한 병력은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강제 징집한 의용군 5만 여명을 포함해서 10만 명이 되지 이에 비해 국군은 UN군의 본격적인 참전으로 동수 이상의 병력을 확보하고서 낙동강 전선을 유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북한군 역시 격심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공세의 기세를 늦추지 않아 낙동강 전선에서 국군 및 UN군은 결정적인 반격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따라서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을 시작할 경우, 38선까지 전선을 회복하는 데만 1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며, 그 기간도
# 01. 양동작전의 필요 정예부대의 전투력이 크게 고갈된 상태였다. 상당히 오래 걸릴 것임은 충분히 예견되었다.
6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