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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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러했다. 한국을 다녀간 친구들 모두, 한국의 발전상과 한국에서의 나와 나의 사업처의
위상에 새삼 놀라워했다. ‘역시 데이빗!’이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인정하는 듯했다.
내가 방문코스를 마련한 곳 이외에도 그들이 가고 싶어했던 곳을 차질 없이 방문하도록 일정을
만들어 주었고, 방문하는 곳마다 최고의 대접을 받도록 해주었다. 카이스트, 포항제철, 현대
자동차, 여러 대학교, 대학교와의 자매결연, 테크노파크 등 다양한 산업현장과 교육현장을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양국의 대기업 간 MOU 를 맺은 경우도 있고, 교육, 경제, 문화 부분등에서
한국과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 결과, 아제르바이잔 친구들은 나의
성의에 감격하여 그들의 고국에 돌아가서 나에게 진 빚을 갚으려 부단히 애를 써주었다. 현지
대중매체를 통해 나를 부각시킨 것도 그들이 애써준 덕분이었다.
아제르바이잔 사회지도층 친구들을 한국으로 초청한 것을 계기로, 아직은 그들에게 낯선 한국의
도시화, 문화, 역사, 예술, 교육, 삶 등을 그들에게 경험시킬 수 있었다. 이 행사는 그들에게
최웅섭이라는 인물 이외에 한 가지를 더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 하나가 한국이라는
나라다.
“아제르바이잔에서 한국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을 때면 여러분이 보고 겪은 대로 한국에 대해 늘
최고의 논평을 해주십시오.”
한국의 발전상에 놀라워하던 그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놓치지 않고 부탁했다. 내 부탁을 수락한
그들은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에 대해 좋은 논평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바쿠축구장
리모델링
프로젝트
체육부 장관의 고등학교 친구이자 영부인과 같은 학교를 다닌 현지인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어느
날 연락을 해왔다. 나에게 진 신세가 많아 갚아줄 일이 하나 생겼으니, 체육부로 오라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체육부에 가보니 그 친구와 차관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2011 년
독일에서 열린 ‘2011 유로비전 송 페스티벌’에서 아제르바이잔 팀이 1 등을 거머쥐었고, 1 등을
가져간 팀의 나라에서 다음해 유로비전 송 페스티벌이 열리기 때문에 그 준비를 위한 모임이었다.
그제야 대체적인 윤곽을 알게 된 나는 사업가 기질이 발동했다.
“그 프로젝트에 내가 참여할 수 있을까요?”
“무슨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습니까?”
“페스티벌을 열 장소가 있습니까?”
“그것 때문에 지금 회의 중입니다. 대통령 각하가 지시하기를, 공사를 두세 군데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곳을 고민해보라고 하셨는데…”
순간, 즉흥적으로 기존에 있는 축구장을 리모델링해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유로비전 송
페스티벌이 끝난 후에도 리모델링한 축구장을 국제 축구장으로 사용하기에 충분하므로,
실질적으로는 한 번의 비용으로 두 가지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축구장을 리모델링하여 그곳에서 유로비전 송 페스티벌을 개최하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