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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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배기 어린애처럼 요구사항만 수없이 늘어놓는다. 먹고 사는 문제, 자녀문제, 남편문제,
집안문제, 셀 수 없이 요구한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이러자고 선교지에 온 것인가,
회의에 빠지게 되곤 한다. 물론, 맞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시면서 복음을 전했으니까.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먹여주고, 치료해주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는가! 나도 그렇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치고 힘이 들었다. 나에게도 먹고 사는 문제, 자녀문제, 가족문제, 집안문제 등
쉴 틈 없이 피곤하게 밀려드는 문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고민하고 상념에 빠진다.
‘나를 이리도 지치고 힘들게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에게 주님의 사랑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현지인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부족해서일까?’
‘언제 저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언제 저들이 자생적인 크리스천이 될 수 있을까?’
연속되는 고민마저 또 하나의 고민이 되는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선교지에 갈 때 65 세가
정년이라고 들었다. 파송받을 때 43 세였으니, 20 년을 선교지에서 살아야 할 일이었다. 아직
16~17 년이나 남아 있는데, 불과 3~4 년이 지나자 시험이 찾아왔다. 앞으로 20 년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표현하자면, 눈 앞에 끝이 계획되어 있는 일은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어떻게든 참고 견디게 된다. 하지만, 끝이 없고 그 상태 그대로가 계속
이어진다는 개념이 주는 막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들은 매주 말씀을 들었고, 듣고 난 후에는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정 그들에게 믿음이
있는지, 복음이 있는지, 인간의 심지를 확인할 길이 나에게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요구했다. 그 사항들에 대해 외면할 수도, 계속해서
받아줄 수도 없는 처지에서 내가 생각해냈던 것은 고작 이런 자문자답이었다.
‘교육을 시켜서 대처 능력을 키워줄 것인가?’
‘선교는 단거리가 아닌 먼 거리를 달리는 장거리 경주와 같은 것인데, 초반에 진을 다 빼면
지나간 시간보다 많이 남아 있는 앞으로의 시간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것이 나만의 현실인가, 아니면 선교지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인가?’
‘주님, 어찌 하오리까?’
결국 바라보고 하소연했던 곳은 주님이었고, 그런 내게 주님은 그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주변의 많은 선교사들 이야기를 기도응답으로 들려주셨다. 그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다.
선교에는 단거리 방식도 필요하고, 장거리 방식도 필요하다. 하지만 정착해서 삶을 이어가는 장기
선교사라면 장거리 경주의 호흡법으로 달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점에서 앞서 잠시 설명했던,
‘under mission’과 ‘up mission’을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선교의 롤모델을 만들어보기로 하였다. 즉,
‘영향력 있는’ 선교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기존의 방식과 다르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으로 나뉠 수 있다.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나는 비즈니스선교라는 이 길을
선택했다. 이유는, 경제나 문화나 사회적 개념이 국경을 넘어서는 오늘날의 시대에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그리고 많은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역마다 정보가
제한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구촌 전체가 정보와 감정을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영향력에 의해, 한 사람의 리더십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함께
열광하고 동감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선교에 잘 활용한다면, 국가와 사회에
영향력 있는 선교사로서 기독교적으로 잘 행동한다면, 그런 선교사들의 영향력 있는 인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