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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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궁안 삼간평은 19세기에 와
서야 바다를 막아 농사짓기
가 가능했다. 이곳 삼간평의
강참봉(강봉수)은 천석궁으
로 알려졌는데 갯벌을 막아
서 60여만 평의 농지를 조성
한 사람으로 수십 명의 머슴
을 두고 경작했으며 염벌을
19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러
나 작은 뚝들은 해일로 자주
무너져서 바닷물이 들어오
면 농사를 실패하기 마련이
었다. 3)
궁안과 삼간평은 원래 바
닷물이 드나드는 갯벌이었
다. 소금 흙을 모아서 좀더
높게 염벌을 만드는데 높은
곳이다 보니 바닷물을 피할
수 있었다. 이 높은 염벌에
오두막을 지어 살다가 차츰
바닷물을 막아서 갯벌을 논
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마을
임우춘의 무과급제 교지(1735)
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우물
이 없었다. 땅을 파면 짠물만
나오니 똘물을 퍼다가 옴박지에 넣었다가 정화하여
궁안 삼간평에서 먹곤 했다.
행안 앞바다는 곳곳이 배를 댈 수 있는 곳이었다. 궁
행안을 이해하는 열쇳말 중 하나는 ‘행안은 바닷가 안으로 들어가는 두주막거리에도 작은 배가 들어왔고
였다’는 사실이다. 청동기 시대에는 행안산 밑까지 바 궁안의 똘 앞까지 배가 들어오고 대벌리 지나 새봉산
닷물이 들어왔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행안산 주변의 에는 제법 큰 중선배가 닻을 내렸다. 궁안리 쪽으로 젓
마을들은 일찍이 바다에서 벗어나서 농사를 짓는 곳 거리 배가 들어오면 마을에서는 징을 쳐서 동네사람
3)고삼곤 증언-부안군 행안면 삼간평 출신(1936년생).
014 부안이야기·2018년/겨울/통권제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