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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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도에 만들어진 대교, 물 속에는 옛 큰다리 자취가 남아 있다.







            물이 들랑거리는 하서면의 두포천을 건너야 했다. 이                      무개, 주산면 홍해로 갈 때 거쳐야 하는 큰 포구였다.
            곳에는 대교(大橋)라는 나무다리가 있어서 우마차와                       이 다리를 대교(大橋)라 이름 하였지만 사람들은 ‘큰

            사람들이 건널 수 있었다. 나무다리 건너서 오른쪽의                      다리’라 불렀다. 일제 때는 물건을 잔뜩 실은 배와 고
            대교 마을에는 술집이 있었다. 고군산군도의 비안도,                      깃배가 큰다리까지 들어왔다.
            신시도, 야미도 사람들이 물때를 맞춰 대교에 배를 대                       대교 마을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이층집에서 뱃사

            고 부안장을 이용하여 장사도 했다.                               람들을 상대로 선구점도 하고 잡화도 팔았다. 우마차
              1935년 5월에 두포천을 건너는 큰다리와 갑문이 완                   들의 통행이 잦다보니 마을에는 구루마공장이 있어
            성되었다. 여기서 흐르는 물길을 ‘약산(若山)이 똘’이                    우마차를 수선했다. 이발소도 두 군데나 있었고 술집
                     5)
            라 부르기도 했다. 다리 밑을 흐르는 물길이 두포천이                     도 여럿이었다. 전주관이 컸고 기생도 4~5명을 두었
            고 배가 정박할 수 있는 포구는 두포(斗浦)였기에 ‘두                    다. 이곳은 밖에다 밤새도록 호야 등을 밝혔다. 전주관

            포교(斗浦橋)’라 불렀다. 두포는 상서면 장다리나 나                     옆으로는 해월관, 군산집, 목포관이라는 술집이 이어



            5)정재철, 「큰 다리에 돛단배 들어오고」 부안독립신문, 2010.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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