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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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게 알렸다. 물고기도 사고 물물교환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배에는 조기와 각종 말린 바다고기들 큰다리 주변 마을에는
이 있었고 딩핑이젓(황석어) 등이 있었다. 가을 추젓
등 도가지마다 고기가 바글바글했다. 이곳 사람들은 1932년에 변산 일주도로가 개통되고, 1933년에는
쌀과 민물고기로 이들과 물물교환을 했다. 부안김제전주의 여객자동차 운수업자들이 중심이
궁안의 똘개목(수문통거리)에서 고기들을 많이 잡 되어 ‘변산 해수욕장 조합’을 조직하여 변산 해수욕장
았다. 뚝 안쪽으로는 참게와 장어가 많았는데 산란기 을 개장했다. 해수욕장 적지를 변산 해변으로 확정하
가 되어 바다로 나가려 할 때 개맥이(막아서)를 해서 고, 일인들의 취향을 돋우고 많은 해수욕객을 유치하
잡았다. 물이 많이 들어오는 사리 때는 뚝 안으로 마룩 고자 호남 지방에서는 가장 먼저 해수욕장으로 출발
쟁이(모치가 좀 크면 마룩쟁이, 다 크면 숭어라고 부 하였다.
름)와 깔따구(농어새끼)가 들어와서 나가지 못하고 민 본정통의 군청 앞에는 차부가 만들어졌다. 차부에서
물에서 산다. 뜰채로 이런 고기들을 많이 잡았다. 4) 출발한 차가 신작로를 이용해서 변산을 가려면 바닷
궁안 마을 전경
4)임기태 증언-부안군 행안면 궁안 출신(1946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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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1_행안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