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자치분권_본문_조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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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4살, 5살이었다. 아내는 퇴사를 하겠다는 필자의 결정을 눈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로 설득했다. 양가 어르신들의 반대도 작지 않았다. 그만큼 필자의   또한 필자를 지방정치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만든 것은

 가장 가까운 곳부터 정치에 대한 희망과 미래를 보지 못 했던 것이다.   지역 학부모 활동이었다. 2000년을 기점으로, 기존에는 지역 부호나
 필자는 현실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근무한다면 기업이 필요  유지를 중심으로 육성회를 조직, 지역 초·중·고등학교 운영에 대한

 로 하는 사람이 되겠지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는 되돌아오기   의사결정이 반영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선출된 학부모회, 학교
 힘들 것 같았다. 나이도 적당했고 경험이 쌓여 있고 열정, 도전 의지  운영위원회 등에 이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민주적 절차를 거친

 가 있는 바로 그 시기가 적기라 판단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는 사표  대표단이 구성된 것이다. 필자도 2005년부터 학부모운영회에 선출되

 를 수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길은 뜻이 있는 곳으로 열릴 수밖에   어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없었다.               필자는 아직 지금도 학부모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그 중 장기동에

                  있는 발달장애인 특수학교인 새솔학교에서 학교운영위원장을 맡고 있
 대의민주주의자였던 필자로서 지방정치, 현실정치를 하기 위해 정  다. 학생들의 희망과 미래를 가꾸기 위한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도의원

 당에 가입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2003년부터 2009년까  으로서 부족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다. 중앙

 지, 열린우리당 김포 청년위원장직을 수행하며 김포시의 곳곳을 돌며   정치가 따라 할 수 없는 지역정치만의 장점이기도 하다.
 지역 정치를 시작했다.       학생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는 학생들을 보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선택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지역의 보수화를   면서 보람도 느끼지만 나 자신을 다잡아보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앞으

 막기 위해서였다. 당시 중앙은 김대중 정부로 정권으로 교체가 이루어  로도 교육이 가진 ‘희망의 사다리’ 역할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
 졌으나 지역은 여전히 보수정당이 집권하고 있었다. 바닥이 바뀌지 않  력할 것이다.

 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정치 현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중앙의

 진보적인 분위기는 지역에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이를 변화시킬 필요  필자의 지역 정치 활동은 크게 두 가지 방향 정도로 정리될 수 있다.
 성을 느꼈고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바닥에서부터의 변화였다.  하나는 2003년부터 시작한 정당 활동이며 다른 하나는 2005년부터 시

 당시 김포지역은 정치적으로 보수적 색채가 강했다. 때문인지 지역   작한 학부모 활동이다. 첫 번째의 경우 도당, 중앙당, 청년회 활동을 통
 지인들은 오히려 보수정당으로 시작해야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필자에  해 다양한 활동을 실행했다. 이는 정치적 감각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게 조언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정치는 한 개인의 입신과 안위를 위해   기여했다. 정치가 왜 필요하고 정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42  자치분권 민주주의 열매를 나누다                          민주주의 열매를 키우고 나누는 자치분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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