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3 - 하나님이 주신 멍석에서 멋지게 놀아라(최웅섭이야기)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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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긍지를 지켜줄 수 있는가? 단언컨대 목회자는 목회활동에 전념  하고 섬기면서 성도들의 영혼을 책임지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목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목회활동’이라는 것이   자는 목회의 경륜을 통해 말해 주듯이 다양한 지식을 소유하여 어린

 단지 교회 안의 교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영적활동이라는 전통적   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사랑하고 섬기면서 가르치는 은사와 열
 의미의 목회직 개념으로 한정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정적으로 자신의 혼을 바쳐서 목회하는 등 다양한 장점을 보유하고

 목회자의 경제적 자립이라는 목적 이외에도, 목회자 이중직 목회   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세상에 대하여 단절되었거나, 교회 즉 우

 금지만을 고수하면서 경제활동이라는 수단을 통해 다가오는 사역  물 안에 갇힌 개구리처럼 종교적인 네트워크는 강할지 몰라도 세상

 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날이 갈수록 전  의 모든 것과는 단절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러한 현실 속
 도가 힘들어지는 현실 가운데서 경제활동은 전도의 접촉점 마련이  에서 목사의 이중직이 장미빛인가는 깊이 성찰해 보아야할 문제이

 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자  다. 목사의 이중직 목회에 대하여 모두가 긍정적이지 않은 동료, 아

 립 교회 목회자들 중에는 동시에 목회활동과 경제활동에 종사하면  내, 교인, 교단, 노회 등의 반신반의와 불신 세상에서 이길 수 있을

 서 사역의 비전을 구체화시켜 나가고 있다. 상황과 여건은 고려하지   까? 세속화에 대한 염려 그리고 물질 만능주의 타협에서 견뎌 낼 수
 않고, 단지 목회자가 경제활동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탐닉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중직 목회는 행복한 여건

 하는 목회자’라는 낙인을 찍어 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바  을 만들 수 있고, 이중직 목회는 선교사적이며, 이중직 목회는 모든

 리새인의 모습이 아닐까? 특별한 상황 가운데 놓여있는 목회자에게   교회를 건강하게 할 수 있다. 이중직 목회는 사회를 건강하게 하며,

 경제적 자립의 의지를 높여주고, 경제활동을 통해 새로운 사역의 비  이중직 목회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영토 확장을 위해 봉사와 섬김
 전과 소명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해도, ‘목회자 이중직 목  의 역할을 통해 정적인 목회와 동적인 목회를 할 수 있다고 본다.

 회 불가론’을 불변의 진리인 양 고수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런 의미

 에서 이제는 목회자 이중직 목회 불가론만을 되풀이 할 것이 아니라
                    목회자들이 왜 이중직 목회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왔는가?
 이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해 나가야 할 때다.
 사랑을 베푸는 것. 목회자는 사랑의 마음을 기본으로 갖고 있다.   나는 여기에서 목회자들이 목회만으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일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목회자는 없을 것이다. 목회자의 근본이 사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까지 왔는지를 먼저 점검해보고자 한다.

 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목회를 하면서 사람을 사랑  다시 말하지만 나는 신학자가 아니다. 나는 목사이자 선교사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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