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6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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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단독정부 수립 참여, 5·10 선거 출마
■ 4월 6일, 조봉암은 인천 을구 출마를 표명했다. 인천은 1947년 말부터 이미
선거 열기로 달아올랐다. 1948년 3월 호에 조봉암을 비롯한 인천지역 출마
예상자들의 명단이 나돌기 시작했다. 1년여 만에 인천에 내려 온 조봉암도
배다리와 부평에 선거사무소를 내고 선거준비에 착수했다.
■ 4월 14일, 인천 을구에 제헌의회 의원 입후보자로 등록했다. 당시 직업은
저술업, 기호는 3번이었다. 조봉암은 「나의 정치백서」(1957년)에서 조선공
산당과 결별 이후 단독정부에서 국회의원이 되기까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
하고 있다.
죽산이 출마한 인천 을구는 화수동, 화평동, 창영동, 금곡동, 송림동, 송학동, 만석동, 송현
동 등 현재 동구지역과 월미도 등 중구 일부, 갈산동, 작전동, 일신동, 삼산동, 청천동, 산
곡동, 서운동, 효성동, 백석동, 시천동, 점암동, 경서동 등 부평·계양·서구지역이었다(「인
천일보」, 2011년 6월 29일, "사대주의 배격, 남북통일 주장, 제헌국회 당선").
공산당과 아쉬운 이별(袂別)
나는 해방되던 이듬해, 즉 1946년 7월 민전 의장을 비롯한 모든 공산당
관계의 좌익단체에서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박헌영에게 편지로 모
든 잘못을 지적하고 공산당에서 탈퇴할 것을 명확히 했었고 박헌영 일파
는 나를 제명처분을 한 것입니다. 그 뒤 즉시 나는 『삼천만 동포에게 고
함』이라는 작은 책자를 내어서 공산당과 극우파들의 반민족적인 정치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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