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3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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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지만, 상부의 시달이 하부에 빠르고 원활히 전해지지 못한 것이 제일 큰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그와 동시에 정부는 세워졌지만, 관리들의 복무 정
신이 태만하여 매사가 민첩하지 못하고 무성의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
었다. 한편 이런 폐단 없이 잘 알려진 곳이 있는가 하면 그 직원들은 앞서
국회에서 제정한 정부조직법에 따라 6개월 기한의 직원개편이 원인이 되
어 아무래도 그만둘 바에는 굳이 애쓸 것 없다 해서 의식적인 태만을 한
직원들도 있었으니, 일부 군수, 서장들이 “매입은 절대 성공 못 한다”라고
단언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면 농민들은 어떠한가? 일제의 혹독한 압박을 벗어났다고는 하나
군정 3년간에 그에 못지않은 심한 학대와 속임을 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군정이 농민 속이기는 일상 상수로 농민의 곡식을 수집하는 수단
으로, 물자 보상을 얼마나 굳게 약속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에는 전부
실행치 못하고 말았으니 이번은 어떠한 일이 있든 절대 속지 않을 터이다.
현물교환이라면 모르되 약속이나 전표 같은 것으로는 절대 응하지 않는
다는 것이 농민들의 굳은 결심이요 태도다. 따라서 말단기관에서도 빈손
으로는 이들을 움직이려 하지도 않고 또 조 장관도 그를 수긍하여 어디까
지나 보상물자와의 교환만이 정부의 취할 도리라고 설명하였다. 이쯤 설
명하고 나니 농민들도 잘 알았는지 보상물자의 규정인 벼 3가마에 비료
1가마면 얼마든지 팔겠다는 태도를 보이니, 결국 최초 기도한 바와 같이
비료만 확보하면 750만 석의 매상은 절대 안심될 것이라고 기자도 느꼈
다. “750만 석 분의 비료를 정부는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문제의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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