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2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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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후 조봉암과 조선공산당의 관계
조봉암은 앞과 같이 상해에 도주하여 동지 김찬, 조동호, 김단야 등과 모
의하여 해외부인 그룹을 설치하여 조선공산당과 연락 호응하여 활동 중
다이쇼15년 월 강달영 등에게 혼란한 진용을 재조직하여 중앙 간부를 결
정했는데 이 당도 역시 다이쇼15년 6월 10일 이왕 전하 국장 당일을 기
회로 불온 사건을 일으켜 검거 때문에 다시 와해되었지만 검거를 면한 홍
남표, 구연흠 등이 상해에 도주하자마자 그들도 해외부에 포섭하는 한편
조봉암은 계속해서 조선공산당 대표로서 원동부에 참가하는 등 의연 활
동하기로 했다. 제2차 검거 직후 김철수 등은 다시 노력하던 중 도쿄에서
돌아온 안광천 일파의 책동에 의해 소위 ML파를 주장하고 다이쇼15년
12월 당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지만 그 후 조봉암에 대해서도 대표권
을 취소하는 것도 없이 장래 조직적 활동을 지시하는 것도 없는 때, 상해
에 설치된 국제공산당 원동부는 중국에서 혁명 운동의 이상한 발전에 수
반한 한구에서 국민정부라는 것을 조직한 것 뿐만 아니라 중국 무산계급
운동도 비약적 발전을 이루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여 쇼와2년 4월 상순 그
근거지를 한구로 이전하기 위한 이래 조봉암 등도 조선공산당과의 관계
는 점차 애매하게 되었다.
(4) 한구의 범태평양노동대회 참가
앞과 같이 조봉암과 조선공산당의 관계는 점차 소원해지게 됨으로 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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