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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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이(1904-?)
                                           조봉암보다 여섯살 어린 여성혁명가. 1924
                                           년 '적기사건'으로 구금되었고, 1934년 '함
                                           남  공청사건'으로  검거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실종되었다. 2008년 '건국포장'을 수여 받
                                           았다.



               ■  7월 10일, 일제 당국은 10일 열리기로 한 조선청년총동맹집행위원회를 금

                 지했다. 종로경찰서 측은 조봉암에게 지난번 임시대회를 해산시킨 후 이에

                 대한 모임은 절대 금지한다고 밝혔으며, 3인 이상의 모임을 허락하지 말라

                 는 내훈이 있었다고 했다(「동아일보」, 1924년 7월 11일 2면, "청년동맹집
                 회는 3인 이상이면 금지").

               ■  7월 14일, 서울청년회관에서 암태소작인 아사동맹동정단(岩泰小作人餓死

                 同盟同情團)을 결성하고, 결성 결의문을 채택했다. 조봉암은 실행위원으로
                 선출됐다.



                [암태소작인 아사동맹동정단] 암태도는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한다. 암태도 소작인회는
                1923년 12월 2일 암태청년회 서태석, 서청석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했다. 1924년 3월
                부터 본격화된 소작쟁의는 두 차례의 목포 원정 농성을 거치며 각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
                았다. 7월 14일에는 서울청년회에서 30여 명이 모여 회의를 갖고 ‘암태소작인아사동맹
                동정단’을 조직한다. 실행위원으로 김유인, 조봉암, 임표, 이정윤, 김덕한, 전일, 임종만
                등 6명이 선정됐다(박찬승, 2010: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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