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9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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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5일, 종로 중앙기독청년회관에서 691명의 신문 잡지 기자가 참가한
                 조선기자대회가 열렸다.




               ■  4월 17일, 경성부 황금정(현재 을지로) 아서원(중국집)에서 조봉암 등 19 명

                 이 모여 조선공산당을 창당했다.



               ■  4월 18일, 박헌영, 임원근, 권오설, 조봉암 등이 훈정동 박헌영 집에서 고

                 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를 조직했다.

               ■  4월 20일, 열리게 되어 있던 민중운동자대회는 경찰의 돌연 금지로 열릴 수

                 없었다. 4월 19일 본정서 고등계에서 조봉암을 불러 20일 개최할 대회는 상

                 부의 명령으로 금지한다고 통보했다(「동아일보」, 1925년 4월 21일 2면, "
                 민중운동자대회 경찰이 돌연 금지!"). 이에 울분을 느낀 민중운동자대회 대

                 의원들이 단성사와 우미관 앞 등 두 곳에서 시위행진을 벌였다. 우미관 쪽에

                 서는 신철수 등 200여 명이 ‘무리한 경관의 압박에 반항하자’, ‘전조선 민중
                 운동자대회 만세’, ‘무산자 만세’ 등 구호가 적힌 붉은 깃발을 앞세우고 단성

                 사 쪽으로 행진했다. 경찰은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했는데, 이것이 ‘적기

                 사건’이다(전명혁, 2006: 214). 조봉암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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