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죽산조봉암기록
P. 64

종로거리에서 본 YMCA 광화문방향.  A로 표시된 곳이 회관 본관으로 집회와 강의시 사용하였다.
                   B는 직업훈련 시설이고 C는 체육 교육을 하는 청년관이다. C뒤편에 야구와 같은 실외 체육을 할
                   수 있는 운동장이 있었다.
                   (Minnesota Libraries)













                   직업훈련 시설과 교육모습                  체육교육과 YMCA 야구단

                    [YMCA] "1908년 종로에 YMCA 회관이 낙성되었다. 독립협회가 해산되고 나서 새로운 계
                    몽단체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150여명의 조선청년들은 1899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
                    사를 만나 YMCA의 창설을 강변했다. 이 조선청년들의 주장에 깊이 공감한 두 선교사는 북미
                    YMCA 연합회 국제위원회에 조선 YMCA 창설을 요청했고, 그 결과 1901년 질레트를 파송하
                    게 되었다." (서울근대공간 디지털 콘텐츠:YMCA 회관 낙성)
                    "국내·외 유지들의 힘으로 1907년 5월 25일경부터 건축공사가 시작되었다. 건축설계 감독은
                    돈햄이란 사람이 하고 건축공사는 헨리 짱이란 중국사람이 맡게 되었다. 회관의 규모는 3층 벽
                    돌양옥으로 1층에는 다섯 개의 목공실과 철공실·두 개의 교실·다섯 개의 점포·식당·목욕실 등
                    이, 2층에는 강당과 체육실·친교실·사무실 등이, 3층에는 일반 교실과 교직원실이 있었다. 약
                    600평의 건물로 난방은 증기장치로 했고 건축자재는 수입품이 많았다. 1907년 11월 7일 정초
                    식 때에는 고종황제가 11세의 왕세자, 곧 영친왕을 공사현장에 내보내서 은으로 만든 흙손 2자
                    루를 내리면서 격려했다." (대한 YMCA, 『조선YMCA 운동사 1895~1985년』)



                                                                           63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