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전시가이드 2025년 05월 이북
P. 38

전시가이드 쉼터


        죽음을 기억하라


        글 : 장소영 (수필가)































        체코의 5월의 봄은 아름다웠지만 몹시도 추웠다.                      아침부터 잔뜩 찌푸리던 날씨였다. 결국 가는 도중, 창문에 비가 빗살무늬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런 날씨가 세들레츠 성당 가기에 어울리겠다 싶
        이상기온으로 패딩 안까지 파고 드는 냉기와 간간히 날리는 눈발은 가난한         으면서도 살짝 부담이다. 쿠트나호라 본 역에서 내리는 이는 현지인 몇과 우
        배낭 여행객에겐 시련이었다.                                 리 모자뿐, 대합실 안도 시골 역다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분명 소도시라
                                                        는데 아담하다 못해 작은 대합실엔 비를 피하고 있는 서너 명의 사람들이 우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경험이든 하나의 인상적인 기억은 남게 마련이다. 옛      리에게 눈길을 건넸을 뿐이었다.
        길이 좋아 들어선 길, 비록 여기저기 자랑하는 그 멋진 풍경은 보지 못해도,
        오래도록 느끼는 따스한 사람의 온기가 더 기억에 남을 때도 있다.            역에서 나와 걸어가며 주변을 둘러보니, 어쩌다 보이는 낡은 공장과 지나치
                                                        는 차량도 드문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넓은 광장, 고풍스러운 건물, 박물관에
        친절하게도 기차역까지 마중 나와 준 숙소 주인이 내일 무얼 할거냐 물어왔        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조각상들 사이사이 편의점과 마트, 그리고 마을버스
        다. 여행의 참맛은 현지인에게 묻는 것이라는 지론대로 추천하고픈 곳이 어        같은 트램이 없었다면, 거대한 테마파크가 아닐까 착각을 할 정도인 프라하
        디냐 물었다. 그러니 ‘쿠트나 호라’를 꼭 들러보라고 답해오는 것이었다. 도심     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전체가 유네스크 등록이 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은 소도시인데, 성모 마리
        아 성당과 성 야콥교회, 세들레츠 성당이 있다고 한다.                  지질지질 끊임없이 내리던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이내 개었다. 걸음에 속
                                                        도를 높여 걷노라니 다시 솟는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이 차오른다. 세들레츠
        전날 밤, 루돌피넘에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하고 밤늦게 잠에         성당 가기 전에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보였지만 외관만 둘러봤다. 성당은 유
        들었지만, 쿠트나 호라 방문을 위해 아침부터 바삐 서둘렀다. 체코의 수도이       럽 여행 중 수많은 곳을 들리다 보니 비슷비슷해 보이는 지루함이 내 발길
        자 최고의 여행지인 프라하와 가까워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한 곳이라지만,         을 가로막았다.
        타국에서의 여행은 변수를 생각해야 하니 여유 있는 시간 배분은 언제나 잊
        지 말아야 할 원칙이다.                                   이윽고 당도한 세들레츠 성당, 담 너머에서도 보이던 외부 묘지가 있어, 입장
                                                        하기 전인데도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해골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성당 입
        프라하 중앙역에서 알아보고 물어보며 겨우 기차표를 끊었지만, 한국과 달리        구에는 아직도 발굴 중이라는 안내문과 현장 사진, 번호표가 붙은 채 땅속에
        출발 시간도, 도착 시간도 연착에 연착을 거듭하는 곳이다 보니 2시간 가까이      묻힌 뼈의 일부가 가감 없이 드러나 있었다.
        걸렸다. 퀴퀴한 냄새와 칠이 벗겨져 손때로 번들대는 나무 의자로 살풍경한
        모습의 객실은 마치 옛 무궁화호 같았다. 아들과 나는 객실로 들어가지 않고       경직된 마음으로 문을 통과하자마자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는데, 그 정
        통로 의자에 앉아 바깥 풍경을 완상하며 가는 쪽을 택했다.                면 위에는 실제 해골로 장식된 십자가가 우리를 맞이했다. 출입문 옆에는 뼈
                                                        와 해골이 철 구조물 안에 차곡차곡 쌓여 섬뜩하면서도 독특한 조형미를 갖



        36
        36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