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전시가이드 2025년 05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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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드 장군의 승리_브론즈, 인터페이스 보드, 센서 등의 혼합재료_가변설치_2024





            매체/180×60×50㎝/2019)와 ‘나의 양철 남편’(레진, 초음파 센서, 모터 등의 혼  체임에도 ‘(기계)생명체’(Animaris)로 불리며 유한한 삶을 살다가 후세대의 영
            합 매체/200×120×130㎝/2014)을 제시하고 ‘로봇에게도 권리를 부여할 수 있  속적 삶을 기리며 짧은 생을 끝냈다. “예술과 공학의 장벽은 우리 마음속에만
            는가’ 등의 질문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숙고하도록 한다. 개인적으로 ‘나의 양     존재한다”라는 얀센의 말처럼, 미술의 역사 속에서 인간과 구분되는 타자가
            철 남편’을 지누지움(2019)에서 마주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관람객의    아닌, 나를 반영하는 ‘거울’로 기능하는 무기체이자 ‘기계적’ 존재들은 인식 방
            동선을 쫓는 눈동자의 미세한 움직임, 그리고 스스로 기계화되어 가는 과정이       식 자체가 인간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인간을
            가시적으로 확인되는 모습에서 나 자신이 이입되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         반영한 대상으로 관심받아 왔다. 즉, 미술가들은 미술사적 업적으로서 기계의
            럼 노진아 작가의 작업은 기계의 작동 원리를 탐구하면서도 이를 통해 인간의       발전 정도를 실험하는 데 몰두하기보다는, 우리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감각 체
            심리와 감정이 어떻게 반추되는지를 스스로 사유하게 한다.                 계를 다시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미술가들은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감각이나 몸의 반응 방식, 정서적 인
            “급변하는 기술의 발전, 특히 AI는 모든 것을 삼킬 것 같지만 지구의 긴 시간    식 방식을 기계를 통해 새롭게 바꾸고 조정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자율적이
            안에서 인류는 수많은 탄생과 소멸 중 일부”라는 작가의 말에 더하여 문화매       고 독립적인 존재로 연출된 <로봇 K456>과 ‘해변동물’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거진의 황명열(2024)은 ‘진화적 시간의 알고리즘’에서 인류의 미래로서 기술     반영하고 확장할 수 있는지를 전자 기술과 문화적 언어로서, 자연의 힘과 구
            이 이끄는 진화적 시간을 함께 고민하기를 작가가 제안하고 있다고 평하였다.       조적 생명성을 통해 그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러한 질문은 노진아 작가에게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과 긴밀히 연       이어진다.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라면, 새로운 생명체라면 기술 중심의 사회
            결된 삶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감각적 정체성을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에서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 것인가를 고
            즉, 기술을 통해 감각이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 속에서 그리고 기술로 인     민해 보라고 요구한다. 최근의 작업인 <진화적 키메라-가이아>와 <러드 장
            해 감각이 재구성되고 확장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군의 승리>는 기존보다 상승된 권력을 지닌 존재로서 관람객에게 성큼 다가
                                                            온다. 존재 가치에 대한 고민에 머물던 기계에서 이제 기술적 권력의 논리에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은 인간이 유기체이자 생명체라는 점이지만, 이러한         따라 생명을 정의내리고 통제하고 변화시키며 진화하는 결정권을 지닌 존재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다양한 시도가 미술에서는 있어 왔다. 백남준(1932-      로 거듭나고 있다. 이제 조금 무서워지는가. 그렇다. 노진아 작가의 작품은 단
            2006/한국→미국)의 <로봇 K456>(1964)은 디지털 기반 미디어는 아니지만   순히 미디어/디지털/동시대 미술 관련 단원에서 기계를 접합한 사례로서 소
            백남준의 작업으로는 드물게 키네틱 기계로서 주목받았는데, 거리의 교통사         개할 것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위한 필수적인 시도로
            고 퍼포먼스를 통해 이 로봇은 생을 끝냈다. 얀센(Theo Jansen/1948-/네덜  서, 또한 기술로 펼쳐지는 감각의 재구성이라는 관점에서 미술 교과서에 다양
            란드)의 ‘해변동물’(strandbeests) 또한 디지털 기반 미디어 작업이 아닌 무기  한 이슈로서 소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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