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전시가이드 2025년 05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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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새 떼 IV, 113x63cm, Oil on canvas, 2024
2025. 5. 2 – 5. 14 갤러리내일 (T02-391-5458, 새문안로 3길 3)
새 떼
우리가 ‘크다’고 느끼는 감각 역시, 실제 대상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이종규 회화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지각, 그리고 사고의 프레임에 좌우되는 것일 수 있
다. 절대적인 크기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이라는 주체의 상대적 위
치에 따라 사물은 끊임없이 다른 의미로 변주된다.
글 : 이종규 작가노트
작가는 이 참새를 'Sparrow'가 아닌 '참새'라고 부른다. 이는 단지 언어의 문
참새 앞에서, 세계를 다시 보다 제가 아니다. 언어란 우리가 태어나며 받아든 세계의 코드이자, 수많은 사회
봄날, 노란 개나리 앞에 한 마리 참새가 서 있다.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작은 적 약속과 문화적 맥락의 총체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결국 세
이 새는 어느 순간, 마치 기지개를 켜듯 몸을 길게 늘인다. 그런데 그 찰나의 계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에 대한 선택이다.
움직임 속에서 문득 스쳐 지나가는 기상이 있다. 마치 독수리처럼 당당하고
위풍당당한 기운. 그것은 단지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우리 인식이 만들어낸 참새는 그저 참새일 뿐이다. 작지도, 크지도 않으며, 거창하지도, 하찮지도 않
또 다른 진실의 가능성이었을까? 다. 우리가 사물에 부여하는 모든 가치 판단의 잣대에서 벗어날 때, 존재는
비로소 이름이 아닌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개나리 앞
우리는 흔히 사물을 ‘작다’ 혹은 ‘크다’고 구분하며, 위대함과 사소함, 아름다 에 선 이 작은 새는 자연이 들려주는 가장 단순하고도 깊은 진실의 한 조각
움과 추함, 선과 악을 판단한다. 하지만 이 모든 기준은 정말 절대적인 것일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진실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이 열려 있을 때 비로
까. 어쩌면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미 머릿속에 짜 소 모습을 드러낸다.
여진 사고의 틀과 익숙한 관념 속에서만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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