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전시가이드 2025년 03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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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 아키즈키, 29.7x21cm, 종이에 과슈, 2025 아키즈키레지던시 포스터이미지
만욱, 나라는 틈의 발견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터득한 듯하다. 지독한 관찰-파고들
기의 과정을 통해 ‘生-실존’의 과정을 표현한 작가의 작업은 영상-사진-설치
박경화와 만욱 사이, 여기 틈과 구조를 오가며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 작품들 등 시선을 달리한 다각적 접근법을 통해 오롯이 ‘삶과 예술이 하나의 방식임’
이 있다. 툭 던져진 선들 사이를 유영하다 보면, 어느새 그림은 삶이 되고 오 을 깨닫게 한다. 작가는 말한다. “작업 방식은 다르지만 살아내는 생존은 우리
늘이 된다. 규칙이 범람하는 세계 속에서 만욱의 시선은 최대한 힘을 빼고 나 모두에게 동일하다.”고 ‘삶일 뿐일 예술’에 귀 기울여 보라고…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발견은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이나 기대
가 아니라, ‘진짜 나 자신 되기’라는 명제와 닿아 있다. 작가의 기존 작업들은 선우, 발길 닿는 대로
인간구조에서 벗어난 변형된 자연물과 비인간종(種), 혹은 기계와 미디어 등
사물과의 비규정적 구조를 다뤘다. 콧수염이 달린,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인지 과하지 않은 그 자체로의 머묾, 어찌 보면 선우의 작업은 그 자체가 여행이자
여성인지 알 수 없는 탈(脫)젠더형 인간들은 젠더 없는 인간인 ‘걔’로 지칭되 삶의 궤적일지 모르겠다. 그림 속에서 우리는 태양과 파도에 몸을 던져보기도
며, 인간-동물-식물-기계를 뒤섞은 형태와 함께 존재한다. 자연형인 ‘개’와 사 하고, 파랑새를 쫓아 미지의 어떤 곳으로 떠나보기도 한다. 말 그대로 선우의
물형인 ‘계’를 ‘걔’라는 모호한 붓질로 통일시킨 시리즈들은 이른바 룰이 없는 그림은 힘을 빼고 봐야 이해되는 진짜 나와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은
‘No rule’ 속에서 질서와 규칙이 사라진 평평한 세상과 만난다. 하지만 작가는 내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고, 등장인물은 정해진 누군가가 아닌 누구나 될 수
구조적이면서도 거시적인 내러티브 속에서 ‘참된 나란 누구인가’라는 내면형 있는 존재이다. 그림의 여백이 많은 이유도 누구에게나 여백이 되는 삶이 중
이야기와는 조금 멀어지게 됐다고 자문한다. 기록하는 타자에서 그리는 자아 요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고백을 들어보자. “드로잉은 세상에서 뭔가를 발견
로 들어간 이번 레지던시의 경험들은 아키즈키(어린 시절 접한 순수세계)라 하려고 하는 나의 시선이자 삶의 기록입니다. 사생을 통해 대상을 그 자체로
는 평범한 일상 안에서 ‘학습화된 박경화’가 아닌 본질 안의 나를 자연스럽게 바라보며 관성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부분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 결
발견시키면서 80년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작가 만욱’을 환원시킨다. 아키 국 저는 대상을 대상 그 자체보다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저만의 시선으로
즈키 신문(그들의 일상) 위에 그려낸 작가의 자화상은 언어(기호화된 구조) 이 은유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그림 안에는 기타를 맨 소년이 등
전의 ‘순수 자아’와의 만남을 유도한다. 장한다. 바닷가를 걸으며 들리는 파도 소리를 통기타 소리처럼 들었다는 작가
는 그때의 감상을 소년 안에 투영한다. 작가에게 그림이 태양이라면, 소년에
우미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게 기타는 태양이 되는 것이다. 선우의 그림은 모두에게 태양이고자 한다. 그
래서 작가는 어느새 기타를 배워 여행을 떠나고, 계산된 작업이 아닌 직관적
자아와 실존을 나무에 빗대 질문해온 우미란의 작업은 삶에 대한 영감과 깊은 선을 세상과 연결하며 ‘그 자체가 여행이자 삶의 궤적’이라는, 철학과 만나게
관련이 있다.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추상 표현주의 기법을 주로 사용해 감각 한다. 선우에게 드로잉은 삶 그 자체이자 기록이다. 가벼운 재미가 곧 예술이
적 경험과 내면적 성찰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되는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의 대칭관계를 상징으로 삼아 인간의 본질적 진실을 작품에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에 지나친 기대와 질문을 했을 경우, 본질로부터 멀어지거 부산 스페이스하이 전시는 3월8일부터 23일까지(오프닝 및 작가와의 대화
나 문제 자체에 빠져 예술가로서 큰 기대치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아키 3.8토 오후4시)이며 정현전기물류(대표 오상훈)에서 레지던시 및 전시후원
즈키 레지던시 이후 작가는 ‘삶의 균형’이 어떤 기대가 아닌 ‘자연스럽게 삶을 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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