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전시가이드 2025년 03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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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과 컨템포러리 아트
부산 범어사의 팔상·독성·나한전 전경
제압하며 그의 등을 밟고 올라서서 창으로 찌르기 직전의 순간을 장쾌하고 극
천장 빗반자에 그려진 비천(飛天) 적인 무브망(mouvement)으로 표현하였다.
또 다른 예로 보티첼리(Botticelli, 1445~1510)가 1489년에 그린 <수태고지(
글 : 박일선 (단청산수화 작가, (사) 한국시각문화예술협회 부회장) 受胎告知)>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수태를 알리
는 장면에서 등 뒤에 날개가 달린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궁궐이나 사찰의 전각 천장에는 여러 가지 단청이 그려져 있다. 특히 천장의 천사 가브리엘은 라틴어로 ‘하느님의 사람’이란 뜻이며, 헤브라이(Hebrew)
일부분을 비스듬이 널을 깔아서 경사지게 만든 빗반자(oblique ceiling, 斜天 신화나 성서 등에 나오는 계시(啓示)의 천사로서 하느님을 모시는 시종이라
障)에는 단청으로 벽화 방식의 그림을 그려 넣는 경우가 많다. 고도 한다. 유대교에서는 미카엘에 버금가는 대천사로 간주하며, 이슬람교에
빗반자에 그려진 벽화 방식의 그림 중에 여러 소재가 있지만 비천(飛天)을 그 서도 무함마드에게 계시하여 예루살렘으로 인도한 천사(malāk)라고 하여 4
린 것이 가장 주목을 끈다. 대 천사로 받들고 있다. 이밖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 B.조토, F.안젤리코 등도
많은 작품에서 중성적인 얼굴에 날개와 두광을 갖춘 가브리엘을 표현하였다.
비천은 불교에서 하늘을 나는 천인이나 천녀를 말하는데, 사람에게는 보이지 이슬람 미술에서 천사는 주로 세밀화에 날개가 달린 모습으로 묘사되었고,
않지만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며 민첩하게 자유로이 날 수 있다고 한다. 초기에는 남성적으로 묘사되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여성적으로 변하게 된다.
서방계의 유익비천(有翼飛天)과 기다란 천의(天衣)를 펄럭이며 비행하는 동
방계의 무익비천(無翼飛天)으로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인도의 고대 신화에 동양에서는 고대 인도의 브라만 시대부터 나타났는데 불교에서는 이를 비천
서는 천녀를 아프사라스(Apsaras) 또는 데바타(Devata)라고 불렸다. 인도 미 (飛天)이라 하였으며, 항상 주악(奏樂)과 산화(散花)를 하며 하늘을 나는 천인
술에서는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산화공양(散華供養)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으로 1세기 전후부터 널리 조형화되었다. 4, 5세기 바미얀 석굴의 석조상이
비상(飛翔)하는 아름다운 자태의 표현이 불교 미술이나 힌두교 미술에서 중요 나 돈황석굴의 벽화를 비롯해서 중앙아시아와 중국 육조 시대에 나타난 비천
한 요소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도의 비천은 서양의 천사(天使)와는 달 은 서방에서 페르시아를 거쳐 들어온 날개 달린 형상과 인도의 형상에서 영
리 날개 없이 나는 것이 특징이며, 보통 남녀 한 쌍이 비상하는 모습을 표현하 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4세기 말 삼국 시대에 서역과 중국
였다. 이에 대해 중국의 비천은 토속신앙의 신선과 결합하여 우아하고 아름다 에서 신선(神仙)처럼 변한 매력적인 천녀(天女)의 모습으로 불교와 함께 들어
운 천녀(天女)의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신선처럼 자유롭고 유려하게 날아다 오면서 고구려 고분벽화나 백제 무령왕릉의 왕비 두침 등에 나타나게 되었다.
니는데 특히 천의(天衣)를 길게 펄럭이며 날아 다니는 모습을 신비스럽게 표 8세기 이후 통일 신라 시대에는 매우 사실적이고 화려하며 세련된 양식적 특
현한 경우가 많다. 도상적 특징으로 상반신은 배꼽을 드러낸 나체이고, 하반신 징을 보이는데, 특히 범종에 새겨진 주악비천은 에밀레종이라 하는 성덕대왕
은 비단처럼 부드러운 옷차림을 하였으며, 표정은 요염하면서 손동작은 유연 신종이나 상원사 동종 등에서 가장 전형적인 양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통일
한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몸에 표대(飄帶) 또는 박대(博帶)라고 하는 넓고 긴 신라 시대의 비천은 고려와 조선 시대로 이어졌으며, 각기 시대적 특징을 간
띠를 걸쳤는데, 이 띠는 허공을 날거나 이동하는 데 쓰이는 수단으로서 머리 직하면서 범종이나 불탑, 단청 등 여러 분야에 두루 쓰였다.
위에서 원형을 그리기도 하고, 이동할 때는 바람을 타고 휘날리며 나부낀다.
단청에서는 제천 신륵사의 극락전이나 부산 범어사의 팔상·독성·나한전에 그
반면 서양에서는 천사라고 하며, 등 뒤에 새의 날개가 달린 형상으로 표현 려진 비천이 일품이다. 먼저 제천 신륵사의 극락전 천장에 그려진 <주악비천
하였는데, 대표적인 천사로는 미카엘(Michael)과 가브리엘(Gabriel), 라파엘 도(奏樂飛天圖)>를 보면, 어느 단청 화공이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악기를
(Raphael) 등이 있다. 르네상스 전성기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인 라파엘로 연주하는 표정이나 자세, 옷의 주름, 옷자락의 펄럭임을 표현한 선은 매우 리
(Raffaello, 1483~1520)가 1518년에 그린 <사탄을 무찌르는 대천사 미카엘 드미컬하고 유려해서 마치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의 걸작 중의 하
>이란 작품에는 날개 달린 대천사 미카엘이 사탄의 무리와 맞서 싸워 사탄을 나인 <무동(舞童)>에 그은 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동>의 작품은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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