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2019년02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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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to recall memories  85×77cm  Mixed media  2017  기억을 건너는 시간 48×48cm Mixed media 2018









            가 하면 굵은 빗줄기가 사선을 그리는 비오는 날 처마 밑에 서 있는 노란색 비     그림세계는 여전히 현실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현실을 빙자한다
            옷을 입은 아이와 형형색색의 우산이 골목길을 메우는 부감구도의 풍경도 펼        지만 실제로는 회화적인 이상이라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지향한다. 그러
            쳐진다. 뿐만 아니라 기와지붕 위로 바깥을 기웃대는 복사꽃이 있고 느티나무       기에 결코 어둡다거나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확인
            고목 아래 술래잡기 하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슬러브 지붕 위에서 수영       할 수 있듯이 그림으로서의 유소년 시절의 추억은 서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마
            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남녀도 보인다. 최근 작품 가운데는 땅에 떨어       치 꿈속의 어느 장면과 같은 환상에 빠져들게 한다. 이렇듯이 그의 작품은 어
            진 동백꽃으로 가득한 화면에 노란 비옷을 입고 서 있는 서정적인 장면도 있       린 시절의 추억을 매개로 하면서도 그 시절의 꿈과 사랑과 희망 그리고 행복
            다. 이처럼 열거하고 보니 그의 작업은 온통 유소년시절의 에피소드로 채워        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서정적인 이미지만으로 치장하
            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는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어린 시절의 순수한 꿈을 표현하려는 것이다. 세속
                                                            적인 욕망에 물들지 않은 순수하고 순연한 어린 시절로 시간을 되돌려 놓음으
            소재 및 제재가 그래서일까. 그의 작업은 확실히 밝고 화사한 현실적인 풍경과      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번잡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순수성을 회복할 수
            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색채이미지에서 현실과는 다른 회고적이고 복고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리라.
            적인 향수에 젖어들게 한다. 이러한 시각적인 이미지는 재료와도 무관하지 않
            다. 발색이 억제되는 오일 파스텔을 사용한 결과이다. 오일 파스텔은 기름 성      이들 작품은 그 자신의 어린 시절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물질적인 풍
            분을 가졌기에 점착력이 높은, 분필과 유사한 재질의 파스텔과는 다른 재료적       요로움을 누리지 못했을지언정 과다한 욕심이 없는 삶이었기에 정신적으로
            인 특징이 있다. 분필 형태의 파스텔은 점착력이 약하기에 질감을 나타내기가       나 감정적으로는 평온했었다. 다시 말해 작은 기쁨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쉽지 않다.  이에 반해 오일 파스텔은 유채와 마찬가지로 반복적인 작업을 통      소박한 삶이었다. 색채이미지가 무거워 보이는데도 결코 슬프거나 우울하게
            해 물감의 질감을 강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파스텔의 가볍고 밝은 성향의 색      느껴지지 않은 것은 그 안에 담긴 희망의 메지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채이미지와는 다른 중후한 분위기를 표현하는데 적합하다. 현실적으로 이러         메시지는 다름 아닌 세상에 대한 희망이자 삶에 대한 긍정이다. 눈부신 전자
            한 분위기의 그림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가능하면 밝고 아름다운 색채이미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자연 또는 인간 본연의 순수성을 그리워하게 된
            지를 지향하는 최근의 화단 경향과도 다르다. 설령 유소년 시절을 내용으로 하      다. 몸은 현대적인 생활환경에 적응하면서도 마음은 자연으로 향하는 것이다.
            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의 경우일지라도 대체적으로 밝고 아름답게 묘사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적인 순수성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적인
            어쩌면 중후한 느낌의 색채감각은 그 자신의 말처럼 아날로그 시대의 정서를        가치인지 모른다. 그의 작품은 이와 같은 현대인의 삶에 던져지는 아름다운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밝고 화사한 색깔을 선호하는 디지털 시대의 현대적       한 편의 서정시와 다름없다.
            인 색채감각과 다른 중후한 색채이미지는 이에 연유한다. 소재 및 정서를 자
            신이 체험한 유소년 시절로 설정함으로써 설득력이 강하다. 그의 경우와 같은       동백꽃을 소재로 하는 최근의 작업에서는 서술적인 이미지를 생략하거나 줄
            정서적인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지향하는 조형세계에 대         임으로써 함축적인 화면구조를 통해 시적인 긴장감을 불러들인다. 많은 이야
            한 감정이입이 한결 쉬우리라 생각된다.                           기를 간결한 이미지와 단출한 구성으로 압축하여 시각적인 이해를 초월하는
                                                            아름다운 서정미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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