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전시가이드2025년 09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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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정의 전시포커스
        뭉게구름 피어나고 _두리둥실 춤을춘다, 2025, 종이에 샤프, 45.5 × 65.1cm
         열린도감, 아종(亞種)의 생태계
                                                        관계의 유전학을 해독하는 실험실이다. 당신이 작품 앞에서 느끼는 낯섦과 친
        김남헌 작가                                          숙함의 경계에, 이미 무수한 아종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샤프의 신화, 드로잉의 정글
        글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김남헌의 드로잉은 날카로운 관찰과 감각적 충동이 맞물린 예술적 탐사다.
                                                        작가의 눈은 감정을 포착하고, 손은 기억을 해체하며, 흑연은 이를 시각적 언
                                                        어로 번역한다. 종이 위에 남은 흐릿한 농담의 잔상, 문질러 번진 흑연의 층
        “아종은 타인의 시선에 잠식당한 나의 파생형이다.                     위, 중첩된 다안체(多眼體)의 인물들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서는 열린 도감이
        누군가와 마주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변종(變種)이 된다.” - 김남헌 인터뷰     다. 여기서 인간과 감정, 기억과 서사는 경계를 넘나들며 숨 쉬며 살아 움직인
                                                        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색을 배제한다. 색채가 주는 즉각적인 정서 반응을 걷
        김남헌의 작품은 인간계(人間界)의 미세한 진동을 포착하는 감각의 현미경이        어내고, 흑백과 무수한 회색 음영으로 감상의 조건을 평준화한다. 샤프는 선
        다. 작가의 손끝에서 샤프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관계의 유전자를 해체하는       을 긋는 도구를 넘어, 감정을 질감으로 저장하는 정교한 매체다. 사전 스케치
        수술도구가 된다. 매번 새로운 만남은 ‘나’를 새롭게 변형시키고, 그 균열 속에    없이 시작하는 작업 과정은 창조가 아닌 발견의 철학을 반영한다. 계획된 형
        서 ‘아종(亞種)’이라는 독특한 감정의 돌연변이가 태어난다. 전시장을 채운 검     상보다 손의 리듬이 우선하며, 이는 몸이 기억하는 감정의 순간들을 끌어내
        은 선들은 이러한 정서적 변이 과정의 단면을 포착한 흔적들이다. 애니메이션       는 회화적 직관이다.
        의 프레임처럼 분해된 표정들, RPG 캐릭터 생성 화면처럼 배열된 신체 부위
        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인간관계 지도를 그리도록 유도한다. 여기서 각      작가는 일상에서 포착한 몸짓과 표정을 머릿속에 저장했다가 새로운 존재로
        작품은 닫힌 이미지가 아니라 감정의 오픈소스 파일처럼 기능한다. 이 전시는       환생시킨다. 작가의 인물들은 단순한 초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변형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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