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전시가이드2025년 09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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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경국사 산신각 벽화                                 삼각산 경국사 천태성전 벽화




            각각의 벽화는 나뭇가지가 화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그 위에 새가 날거나       화는 절개와 고고함을, 국화는 늦서리에도 청초함을, 모란은 부귀를, 포도와
            앉아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는 화면에 움직임과 리듬감을 부여하고, 작      석류는 다산과 번영을, 난초는 고결한 기품을 의미한다. 이처럼 각각의 벽화
            은 공간 속에서도 시각적으로 확장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새와 꽃, 곤충     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사찰을 찾는 이들에게 불법(佛法)의 덕목과 삶의 길
            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 듯 배치되어 있어 서로의 교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잡이가 되는 정신적 가치를 전하고 있다.
            새의 날갯짓, 꽃의 만개, 나비의 비상은 모두 순간적인 장면을 포착한 듯 묘사     또한 화면 구성이 담백하면서도 세밀하다. 군더더기 없이 꽃과 나무, 새와 나
            하였다. 특히 새의 부리와 시선은 꽃이나 곤충을 향하고 있어 정적인 장식화       비가 중심이 되어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게 한다. 단청의 화려한 문양 속에 배
            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자연의 한 장면을 담은 듯 회화적 감각이 살아 있다.     치된 이 벽화들은 화려함과 소박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시각적인 조화와
            그림에는 길상(吉祥)의 의미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꽃과 새, 나비의 조합     더불어 깊은 상징성을 품고 있다.
            은 생명의 순환과 조화를 상징하며, 이는 불교적 세계관의 자연과 생명을 존
            중하는 사상과도 연결된다.                                  비바람에 조금씩 색이 바래고 벗겨진 흔적은 오히려 세월의 무게와 역사적 깊
                                                            이를 드러낸다. 그것은 사찰 벽화가 단순히 장식물이 아니라 긴 세월 동안 신
            이 벽화들은 사찰 건물의 장식적인 요소로서 기능하면서도, 협의의 단청을 넘       앙과 함께 이어온 문화적 흔적임을 보여 준다.
            어선 회화적 특징을 보여준다. 꽃잎과 깃털의 세밀한 묘사, 그리고 색의 농담
            을 통한 깊이감의 표현은 장식성과 회화성의 절충으로서 단청의 장식적 한계        경국사에 이러한 벽화들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단청과 탱화의 대가였던 금
            를 넘어서서 예술로서의 단청을 보여준다.                          어 보경(寶鏡, 1890~1979) 스님의 공덕이라 생각된다. 1921년부터 1979년까
                                                            지 60년 가까이 이곳 경국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퇴락한 건물을 중수하여 한
            천태성전에 그려진 벽화도 한국화를 보는 듯하며, 오래된 전통의 숨결이 고스       국 불교의 모범적인 사찰로 변모시켰으며, 단청과 불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
            란히 현재로 이어져 내려오는 듯한 감흥을 준다. 벽화의 바탕은 산신각의 벽       전시켰다. 이렇게 탄생한 경국사의 벽화는 단청의 화려한 장엄 속에서 자연과
            화와 마찬가지로 삼청색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는 단순한 색채를 넘어 무한한       인간의 염원이 어우러진 한국 불교 미술의 소중한 자산이라 생각된다. 시간이
            하늘과 청정한 세계를 상징하는 듯하다. 그 위에 그려진 매화, 국화, 모란, 포    되면 경국사에서 단순히 그림만 보지 말고 삶과 자연, 깨달음의 길에 대한 사
            도, 난초 등은 모두 우리의 전통 회화가 품고 있는 길상(吉祥)의 상징으로서 매    색에 빠져 보아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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