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전시가이드2025년 09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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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 130.3x162cm, mixed media, 2023
표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서 영감을 얻어 형성된 개념으로, 작가가 바다, 하늘, 들풀, 야생화 등 자연과
맺은 맑고 깨끗한 인연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고 한다. 작품으로서의 ‘청연’
이강화 작가의 ‘독백’은 화면 중앙에 놓인 풀 한 포기를 중심으로 그 뾰족하고 은 ‘독백’에서 보이는 극적인 원근 구도 대신 보다 일상적 시점에서 화면을 구
예리한 그림자가 흙벽 위에 베일 듯 드리운 형상을 보인다. 시점은 정면 혹은 성하고 있다. 색채와 구성 면에서 ‘독백’보다 화려함이 두드러지지만, 이는 세
상부에서 내려다본 급격한 원근으로 설정되어 그 급격한 축도의 단호함이 보 련된 장식미로서의 화려함이 아니라 오랜 세월 환경 속에서 자생하며 스스로
는 이를 압도한다. 작가는 이러한 비일상적 시선과 구도 속에서 과장된 색채 를 지켜온 생명체의 흔적이 응축된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화려함이라 할 수 있
나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시선을 오롯이 단일 존재인 풀에 집중시킨다. 다. 이러한 화려함은 치밀하게 설계된 미적 질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생
이 풀은 단순한 식물의 형상을 넘어, 닫힌 벽을 뚫고 자라나는 생명력과 저항 존의 역사를 압축한 자연의 형상과 그 속에 관통하는 끈질긴 생명 의지를 시
의 은유로 작동한다. 그 내면에는 근성이라 부를 만한 강인한 에너지가 응축 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색채적으로 다양하지만 평면을 배경으로
되어 있다. 보는 이의 시선은 화면 전면으로 돌출된 듯한 풀에서 출발해, 서예 여러 종류의 풀을 묘사한 구성인데, 때로는 배경과 풀의 이분법적 구분을 해
의 필획을 연상시키는 날렵한 그림자로 서서히 이동하며, 마침내 흙벽의 질감 체하고 오직 벽면만 또는 풀만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 또한 색다른 재미를
과 색채에 도달한다. 금이 간 듯 혹은 부서진 듯 복합적인 표정을 띤 흙벽은 여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기에서 진정한 주체는 풀도 그림자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임을 은연중에 드러
낸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이전의 ‘축제’(mixed media/91×116.80cm/2011)에 ‘독백’과 ‘청연’에서는 아니지만 작가는 ‘인연’(mixed media, 50×100cm,
서도 발견되는데, 여기에서는 풀 뒤의 배경이 오히려 더 화려하게 처리되어 풀 2022)에서처럼 작가에게 의미 있는 오브제를 바탕 재로 활용하거나 이질적
과 시각적 경쟁을 벌이는 구도를 형성한다. 이러한 구성적 실험은 작가가 추 재료를 결합해 콜라주 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화면에 낯설음을 부여하기도 한
구하는 시각적 긴장과 화면의 역동성을 구현하는 방법론으로 이해될 수 있는 다. 이러한 색다른 시도는 자연 묘사에 독창성을 더하며 향후 작업에도 유효
데, ‘독백’ 또한 그러하다. 한 표현 전략이 될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실험이 권장된다. 이러한 실험은 일
상을 고요히 응시하는 작가의 예술적 집념과 깊은 성찰에서 비롯되었기에 앞
이강화 작가의 개인전 제목이기도 한 ‘청연’(淸緣)은 겨울의 차가운 바다빛에 으로 펼쳐질 다양한 변신 또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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