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전시가이드2025년 09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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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덕 컬럼
서정(抒情)의 시(詩)를 그리다
현대구상화 장 영 아
글 : 김재덕(미술컬럼니스트. 아트팜갤러리 관장)
가을, 바람 그리고 낙엽. 30.3×162.2 cm, 유화 아크릴 혼합재료
우리 화단의 구상미술(具象美術)은 20세기 초 서양화가 도입되면서 사실주 쓰되, 절제된 색감과 두터운 질감을 선호하며 자연스럽고 소박한 색조로 심
의(realism)와 구상주의(representationalism) 화풍이 함께 들어오면서 이 미감을 더욱 발현하였다.
후 한국적 소재와 정신과 결합해 독자적인 화풍으로 발전하였다. 한국적 구상
(具象)주의 화풍은 실제세계의 사물·인물·풍경 등을 알아볼 수 있게 표현하는 서양화가 장영아는 현대미술 구상화가로 우리 삶 속의 일상과 순박한 정서를
시각미술 표현으로, 화려한 주제가 아니라 시장, 농촌, 가족, 노동 등 우리 삶 독창적인 화풍으로 담아낸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우리 주변의 소박한
속 평범한 일상과 서민적 삶의 유화, 아크릴, 혼합재료 소재가 주류를 이룬다. 표 소재를 굵고 단단한 선,면으로 가르고 거칠고 두터운 질감으로 파격을 이루는
현의 디테일에 있어서 인물이나 사물을 사실적 재현에 치중하기보다는 형태 작업이 특징이다. 근작 [비, 그리고 지나간 날의 흔적들. 91x116.8 cm. 아크릴,
를 다소 단순화하거나 일부 변형해 표현하는 양식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렇기 혼합재료]작품을 보면, 유리창 밖으로 내리는 비가 묘사된 풍경을 통해 감상
에 캔바스 질감이 투박하면서도 정감 있는 형태를 통해 우리의 서정적인 정 자 스스로 비오는 날의 추억을 제각각 추억하게 만들어 준다. 차갑게 젖은 유
서를 전달해 주고 있다. 이러한 점은 서양의 구상주의 기법에 한국인의 정서 리창은 마치 보는 이와 세상을 가로막는 벽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벽 너머
와 경험을 적절한 문화적 요인으로 접목한 결과로 나타내어진다. 한국의 구상 로 스며드는 빗 빛은 오히려 멀리 있는 것을 더욱 선명히 떠올리게 한다. 창가
주의는 민족적 정서가 반영되고 한국 특유의 한(恨), 정(情), 소박함 같은 서정 에 붙은 작은 물방울들은 오래된 그리움처럼 번져나가고, 바람에 흩날린 낙엽
적인 정서가 작품 전반에 깔려있는 특성이 이채롭다. 한국전쟁 이후의 고난 은 계절이 남긴 흔적이자 시간의 흐름을 조용히 증언한다. 작품 속 창은 안과
한 삶과 산업화 시대의 변화를 겪으며 변모되는 자아의식을 감성적으로 담아 밖을 나누지만 동시에 마음속 깊은 풍경을 비추는 거울처럼 보인다. 결국 장
내었다. 농촌 공동체의 소박한 삶의 무게를 담은 풍경 등 단순한 회화적 재현 영아의 그림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서, 비와 낙엽을 매개로 한 내적 감정의 울
을 넘어 민족의 삶과 현실을 기록하는 시대적 역할을 통해 민족적 슬픔과 고 림을 전해주며, 벽에 가려진 듯한 고독 속에서도 그리움이 여전히 살아 있음
단함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강조해 왔다. 채료적으로 서양 유화 기법을 을 느끼게 하여 한국적 현대 구상주의의 정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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