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전시가이드2025년 09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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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리고 지나간 날의 흔적들, 91x116.8cm, 아크릴, 혼합재료
온다. 동시에 작가의 작업과정의 강인함과 성실함이 전해져 창작활동의 경외
서양화가 장영아는 비, 그리움, 창, 벽, 낙엽 등 우리 주변의 소소한 소재들로 심도 들었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구상
서정적인 시각 이미지를 천착해 나간다. 작가는 이 작은 여러 다양한 사물들 주의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장영아의 작품은 예술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
이 자신의 지나간 날의 한 조각 추억으로 품고 있다. 작가만의 화실이라는 고 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현실을 담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도구가 될 수
립된 공간 속에서 느꼈던 심리적 무게와 그동안 이어온 관계 속의 주변인들과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의 보이지 않는 거리를 작가는 화면 위에 아련한 회환으로 풀어놓았다. 심미
적 깊은 감흥을 통해 작가가 감상하고 있는 비가 마음으로 흘러내리듯 물감을 “비, 그리움, 창, 벽, 낙엽은 나의 시간 속에 켜켜이 쌓인 감정의 언어들이다. 한
흘려내리며 창을 통한 풍경으로 기억의 파편을 그렸다. 때 나는 화실에 홀로 머물며, 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의 속도와 나의 정지된 시
간 사이에서 깊은 괴리감을 느꼈다. 밖은 맑고 환한데, 내 마음은 어쩐지 비가
장영아에게 있어서 작업이란 작가의 마음속 깊은 사념이라는 무형의 존재를 내리고, 그림자가 드리운 듯 어두웠다.
손끝으로 불러내어 형태로 빚어내는 일련의 삶의 과정에 있다. 작가가 추구하 유리창 너머로 본 사람들의 분주함은 나를 더욱 고립시켰고, 그 순간들은 서
는 창작의 과정의 기법 속 색채와 형태는 가시화될 수 없는 내면의 바다를 비 글픔과 단절의 색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 감정들도 결국 바람에 흩날리는
추는 거울이 된다. 그래서 작가는 그녀가 사유하는 비 내리는 풍경에 벽이라는 낙엽처럼, 때가 되면 부서지고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 찰나의 심리를 잡아두
오브제를 통해 구상회화의 담론을 제시한다. 또한 창밖의 풍경과 창 안의 풍경 기 위해, 물감의 흐름으로 비를, 굳어가는 붓질로 낙엽을, 그리고 그 사이의 숨
을 넘나들며 우리들 삶을 사유하고 심미적 활동으로 또 다른 이데아의 세상을 결로 내 마음을 새겨 넣었다.“
꿈꾸며 천착해 나가고 있다. 작가가 소재로 자주 차용하는 창밖 풍경의 나무 - 장영아 작업노트중 -
줄기와 아슬하게 매달려있는 낙엽을 통해 지나온 삶 속의 그리움과 슬픔의 감
성을 자아내고 지나온 기억 저편의 자아를 조심히 찾아본다. 장영아의 작품 앞에서 시간은 고요히 멈추는 듯했다. 창밖을 통한 소박한 풍
경들은 바람도, 소리도 없는 세계 속에서 은은히 숨 쉬고 있었다. 화려하지 않
[가을, 바람 그리고 낙엽. 130.3 x 162.2 cm. 유화, 아크릴, 혼합재료] 작품에 으면서 단순한 채료들은 오랫동안 곰삭은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우리 정서 속
서 눈에 띄는 것은 장영아 특유의 거칠고 돌처럼 질감 있는 마티에르의 과감 의 구상의 흔적은 마치 꿈결 같은 파동이 되어 감상자들의 마음 속 깊은 곳까
성이다. 색채는 화려하지 않고, 회색·갈색·흰색 같은 절제된 색을 사용해 단단 지 스며들었다. 창밖에 비친 장영아의 풍경은 다양한 빛으로 번지고 그 위에
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사물과 나무는 사실적이기보다는 단순화되게 표현 얹힌 거칠은 마티에르는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감상토록 이끌어 준다. 작가의
되어 마치 조각편을 꿰 맞추어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묘사의 밀도 보다는 생 창작 행위에 감상의 시점은 한편의 시(詩)로 짓게되며 작가와 함께 물 위에 떠
략할 부분은 생략하고 단순화하는 과정을 통하여 전체적으로 소박하면서도 있는 작은 배가 된 듯, 그 고요한 호수 위를 유영하며 세상의 번잡한 소리를 잊
따뜻한 서정적 분위기를 감상케 한다. 장영아의 작품을 접하는 순간 ‘투박하 는다. 그림 속에는 어떤 거창한 이야기나 극적인 장면이 없다. 그러나 그 단순
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곱씹어볼수록 그 안에서 묵직한 따뜻함이 전해진다. 함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울림이 찾아온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의 강물 속에
특히 작가가 의도하는 소재 대부분이 우리네 삶 속의 소박한 풍경을 떠올리 서, 잠시 멈추어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회상의 시간으로, 장영아의 시는 내게
게 하고 인생의 삼라만상과 함께 사유하는 심연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고 있 그러한 고요한 위로와 평화를 건네주었다.
다. 화려하지 않아도 진실한 삶의 모습이 담겨 있기에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 참고자료----------------------------------------------------------
2025 장영아 작업노트 중 일부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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