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9 - 전시가이드 2020년 05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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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그리고 바람의 안무  17×23cm  캔버스위 장지, 석채, 분채  2019   꽃, 그리고 바람의 안무  32×41cm  캔버스위 장지, 석채, 분채  2020



            함축미와 담백함이 두드러진 것으로 그만의 특징을 지닌 것이었다.             련한 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그로 하여금 무릎을 굽혀 자신의 발밑을 새
            이제 오랜 만에 마주하게 된 작가의 작업은 또 다른 변화를 거쳐 전혀 새로운      삼 바라보게 하는 성찰의 계기를 만들었으며, 이는 그가 감내한 시간의 역정
            면모로 나타나고 있다. 재료는 수묵에서 채색으로, 그리고 웅장한 대자연의 기      속에서 길어 올린 일정한 관조의 산물이라 여겨진다. 그는 어쩌면 먼 길을 돌
            운을 쫓던 거침없던 기세는 작고 소소한 자연의 경물들로 모아지고 있다. 그것      아 새삼 가장 자신과 가까운, 그리고 온전히 자신에 속한 것들을 통해 삶에 대
            은 마치 허리를 곧추세우고 먼 산을 굽어보던 시점을 거둬들여 쪼그려 앉아 자      한 반추의 감상들을 표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의 발밑을 새삼 조심스레 살피는 것과 같다. 이런 시점의 변화는 단순히 물
            리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업 전반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원      비록 소재와 표현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가 발견되지만, 그의 작업은 여전히
            인인 셈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이유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일정한 맥락을 견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동경이며, 우
                                                            리 것에 대한 추구라는 일관된 방향성이다. 단지 그 자연이 웅장한 산수에서
            작가는 ‘그동안 지향해 왔던 실경산수화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필법에서 벗        작고 소소한 경물들로 대체되었을 뿐이며, 지, 필, 묵이라는 전통적 방법론에
            어나 그 재료를 지, 필, 묵이 아닌 우리의 산이나 강 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서 벗어나 광물성 안료의 사용을 통해 자연과 직접 교감하고 소통하는 방식으
            광물들을 채취해 장지에 안착시켜 그 석채들이 품고 있는 조화로운 빛과, 태       로 바뀐 것일 뿐이다. 과거 그가 보여주었던 질박하고 담백한 수묵의 세계는
            고 때부터 광물 속에 존재했던 우주의 숨을 표현하고자 했다. 나의 내면 깊숙      어쩌면 신작들에 나타나는 석채들의 운용에서 그 맥락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이 존재하고 있는 유년시절의 꿈과 서정들을 소나무라는 형상을 통해  단순화       우리 산천 곳곳에서 채집한 광물들은 정교하고 장식적인 인공 안료와는 구분
            시켜 그 꿈들의 집착에서 벗어나 장년의 현재를  받아들이는 내 마음을 표현       이 된다. 일정한 입자를 지닌 거칠고 투박한 질감과 침잠하는 색채 심미는 마
            하고자 했다.’라고 말한다. 이는 전통적인 필묵을 바탕으로 산천을 주유하며       치 인공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풋풋한 나물과도 같은 맛을 전해준다. 더불어
            실경산수에 매진함으로써 포착하고 표출하고자 하였던 대자연의 기운과 우          굳이 꾸미거나 장식하지 않는 작가 특유의 화법은 그가 이전에 추구하고 구사
            리 것에 대한 추구를 보다 확장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는 이제 재료를 통한 정     했던 수묵의 맛과도 매우 유사하다. 어쩌면 이는 작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체성, 혹은 전통성의 천착에서 벗어나 세월의 연륜을 통해 걸러진 자신의 사       자신의 실체이자 우리 미술의 특질이며 그가 지향하는 자연의 본질일 것이다.
            유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것은 작고 소소하며 익히 익숙한 자연의 조각들을 통      작가의 작업은 마치 간결한 에세이처럼 정겹고 경쾌하다. 굳이 꾸미거나 장식
            해 대화하고 교감하며 보다 진솔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과도 같다 할 것이다.      하지 않고, 또 부담스러운 사변으로 점철된 관념을 강요하는 솔직한 것이기에
            작가는 재료로서 광물성 안료를 선택함으로써 그것이 품고 있는 억겁의 숨결        한결 편하다. 더불어 그가 은밀하고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유년의 꿈과 서정들
            을 음미하고, 그 질박하고 본질적인 성질을 고스란히 수렴함으로써 스스로 그       은 익히 익숙하고 자못 사랑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어쩌면 이제 감당
            질서의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하기 어려운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스스로에 속한, 그리고 온전히 자신의 것
            형이상학적인 우주적 성찰이 아니라 ‘유년시절의 꿈과 서정’을 회복하고 육박       들로 세상과 마주하려 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삶에 대한 감사와
            하고자 하는 의지의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기교적인 재치나 조형적인 배려       자연에 대한 또 다른 예찬으로 읽혀진다.
            라는 인위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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