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전시가이드 2023년 06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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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이드 초대석


                                                        글 : 손 청 문 (2009년, 미학박사)
                                                        행위나  설치,  그리고  그의  평면작업에서는  민간신앙(그는  가톨릭신자다.)
                                                        을 근간으로 한 집요한 조형적 탐색과 그 형상적 현현을 위한 작가적 고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시장  안에  이른바  소망베개로서의
                                                        죽부인(竹夫人)을  설치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소원천을  묶게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나아가 평면작업에서 드러나는 점으로 각인된 12간지와 동서남북
                                                        4방은  일월성신의  운행에서  비롯한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상징함은  물론
                                                        천지인(天地人)삼재의 합일사상을 담지하고 있다. 그러한 기복신앙적 믿음은
                                                        화면에 적극적으로 끌어 들여진 타원형의 베개형상, 오방색의 화려함, 힘찬
                                                        필선과 과감한 화면 분할과 함께 토속적이면서도 원시적인 건강성을 담보하고
                                                        있다. 그로인해 강조와 생략, 변형과 왜곡의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형상의
                                                        전형성을 창출하면서 작가의 내면에서 움트는 농축된 파토스의 리얼리티를
                                                        놓치지 않고 있다. 또한 그의 화면에 요추된 이미지들과 조형인자들은 행위와
                                                        설치의  연장선에서  뿐만  아니라  추상성이  가미된  파인아트로서의  독립된
                                                        존재론적 타당성의 여지마저 확보하기에 이른다.
                                                        결국 그의 화면이나 전시공간에 설치된 매체들, 즉 베개, 소원천, 죽부인, 12
                                                        간지와 4방과 같은 기호들은 안식과 평화, 기원과 자유 그리고 근원성으로의
                                                        회귀본능을  공통분모로  하여  현세와  내세의  조우  말하자면  영매(靈媒)를
                                                        갈망하는 매개체이자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이상향에 대한 인간의 절실한
                                                        소망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의 이번 전시는 우리 고유의 민간신앙의
                                                        상징물들을  거론하면서  물신숭배  사상으로  오염된  작금의  세태  속에서
                                                        피폐해져  가는  인간성의  회복을  유념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잉태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입증해 보이는 또 하나의 자리인 셈이다.



                                                        글 : 문리 (2022년, 미술학 박사, 미술평론가)
                                                        대동 세상을 꿈꾸는 몸짓
                                                        전주 서학동에 터 잡은 미술가 심홍재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그의 고백이자
                                                        방백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모든  일에  진심을  다하라.”  지극히  평범한
                                                        금언이지만 순결한 영혼을 가진 작가의 다짐이라서 사뭇 새롭게 와 닿는다.
                                                        심홍재는 그 와중에도 긍정적인 감사와 온화함을 지켜낸 작가이다. 한 예로,
                                                        하상용  선생을  추모하는  퍼포먼스·회고전  기획  등  물심양면으로  존경하는
        글 : 이혁발 (2021년, 예술연구소 육감도 큐레이터)                 선배를  챙기는  일에도  참  부지런했다.  그는  지금도  선배의  무덤을  찾아
                                                        헌화하고, 아름다운 기억들을 간직하면서 산다. 누가 뭐래도 정감 있고 마음이
        용광로의 열기 같은 심상 풍경, 그 시각적 축제 60년 삶이 농축된 ‘획’의 작가는   따뜻한 사람이다.
        ‘12지신’의  한자를  풀어서  서로  엉기게  연결,  조합하여  하나의  형태를  만든   1980~90년대에는  음양오행적  사상에서  비롯한  사유와  사회적  부조리를
        이 ‘획’ 작업을 “사람들이 상생하고 호흡하는 하나 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담아낸  행위예술,  갖가지  오브제를  활용해서  희망을  노래하지만  애잔한
        관람자는 이 형태의 출발이 12지신이라는 연유보다 작품이 뿜어내는 강렬한        서글픔이  배어나는  회화작업,  실험적인  설치작업  등  전방위적인  예술적
        이미지를 크로체가 언급한 ‘직관’으로 느끼며 볼 것이다. 물로 바위에 글자를      활동으로 젊은 날을 불꽃처럼 내달렸다. 2000년부터는 오방색에 기반한 색동과
        써서 바위에 글자가 새겨지는 경지에 오른 대가가 쓴 듯 힘차며 강인한 이        베개·새의  날개·신줏단지,  가톨릭  신자답게  십자가의  형상이  보인다.  2010
        획의 형상은 추상화된 우리다. 사람들이 어깨동무하고, 끌어안고, 사랑하고,       년부터는 드로잉 선이 두드러져 나타난다. 서예의 바탕이자 그림의 가장 근원인
        어울렁더울렁  하는  모습이다.  “무위(無爲)”의자유로운  몸짓이며,  세상  모든   획에 대한 탐구인 것. 이는 인간의 오욕칠정을 토해낸 거친 획이요, 깨달음을
        사물의 움직임이 추상된 것이다. 거칠게 호흡하며 걸어온 작가의 외침이고,        얻은 자유로운 몸짓의 궤적이다. 십이지신을 추상적으로 응축한 12개의 점,
        그  삶의  여정이  추상화된  것이다.  이  꿈틀거림,  용트림은  부드럽다가도   그것을 거침없이 표출한 필선이 서로 얽히고설켜서 에너지 충만한 형상으로
        휘몰아치는 바람이며, 온갖 에너지가응축된 파동이다. 응축된 에너지는 태풍의       수렴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이 상생하고 호흡하는 하나 된 모습” 즉,
        눈처럼 겉보기에 잠잠하듯 이 작품도 그 강렬함 속에 선(禪)적,명상적 태도를      대동 세상이다. 작업 과정을 들여다보면, 화선지 위에 획을 긋고 그것을 길상적
        불러오기도 한다. 이글거리는 용암 같은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부적달마의       문양이 가득한 자개농 위에 붙인 후에 전동 톱으로 도려내고, 수작업으로 필
        그 형형한 눈빛 때문에 달마도가 수호신이나 부적 같은 역할을 맡아 집안에        맛이 손실되지 않게 마무리한다. 한편으로는 회화성 짙게 배경 처리한 캔버스를
        모셔진다. 심홍재 작품에는 달마의 그 눈빛이 수백 개씩 이글거린다. 자개의       미리 준비한다. 그 위에 조각한 획을 고정한 후, 최대한 평평하게 수평을 잡고
        다양한  문양에서  뿜어나오는  광채가  획의  검은  배경에서  강렬한  눈빛들이   레진을 여러 번 붓고 말린다.
        된다. 살아있는 눈빛들이 획을 더욱 기운생동하게 하고 우리를 흡사 작열하는       미술이란  명확한  답이  없는  불확실성을  추구하는  인생의  과정이다.  그
        세상의중심으로 이끈다. 빨강 바탕색은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시킨다. 태양의        불확실성이  작가를  고생스럽게도  하지만  가치를  배가하는  요인일  것이다.
        중심부를 보는 듯하고, 폭발하는화산의 이글거리는 용암을 보는 듯한 착시로        심홍재의 삶에는 오직 불확실한 미술만 가득 담겨있다. 만약 그것을 뺀다면
        몰고  간다.  수많은  형형한  눈빛들과  폭발하는  에너지는  보는자의  악운을   남는 게 거의 없다. 그는 생의 마지막 날까지 하루하루를 예술적 신앙고백의
        물리쳐주고 긍정적 에너지를 지속해서 뿜어내줄 것이다. 집안에 걸어 놓으면        흔적을 남기면서 진실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 고통 속에도 복된 삶을 응원하고
        부적이자, 든든한 수호신이 될 듯하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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