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전시가이드 2023년 06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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Ölschrank Superman, 2022, 캔버스에 오일/아크릴, 64×44×10cm
김근태의 2022-135(2022)과 분청자덤벙호 김춘수의 ULTRA-MARINE 2296(2022)과 백자청채무릎연적
듯, 물의 시간을 헤쳐가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과도기 단계에 있던 것으로, 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도자기라고 할 수 있다. 분
(Yellowstone National Park)의 분화구를 본 이후, 녹색-에메랄드색-파란색 청사기 200여 년 역사의 정점인 덤벙기법의 시야를 보듯 ‘비정형성 사이의 완
으로 연결된 수면의 산란 작용을 캔버스에 옮겨와 ‘스며드는 물빛’으로 재해 전함’이라는 균형의 결과가 작품 사이에 스며있는 것이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
석하였다. 작가에게 재현이란 공기의 색을 담아냈다는 의미에서 ‘Breathing 은 ‘시공간의 파장’이다. 그 간극들이 모여 작품 전체를 이루고 이를 바라보는
light-Air’와도 통한다. 다양한 층을 형성하며 쌓아가는 까닭에 건조된 화면 위 수평의 눈이 시공간의 결핍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에도 촉촉한 비색을 머금는 청자의 비색과 닮았다.
선비의 풍류를 머금은 김춘수(1957~)의 청빛은 청화백자 무릎연적에서 빛을
다름 사이의 창발을 추구해온 박종규(1966~)의 작품은 한국의 독창미를 자 발한다. 작가는 “한국미란 회화의 진실을 통해 자신을 찾듯, 푸르디푸른 자연
랑하는 상감청자의 미감과 닮았다. 작가는 “한국미란 ‘탈아시아화’의 과정 속 의 본질을 좇는 깨달음의 여정” 이라고 정의한다. <백자청채무릎연적(白磁靑
에서 지속적인 혼종성(Hybridity)을 모색함으로써 다름 사이의 창발(創發/ 彩膝形硯滴)>과 매칭된 작가의 <ULTRA-MARINE 2296>(2022)은 넓고 깊
Emergence)을 되새기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작품과 매칭한 <청자상감국 은 자연의 에너지를 화폭에 담았다. 얕음과 깊음을 오가는 묘한 뉘앙스 사
화문과형병(靑磁象嵌菊花紋瓜形甁)>은 이 전시를 위해 제작된 작가의 신작 이에는, 회회청(回回靑; 코발트 성분의 안료)을 연상시키는 귀한 ‘마음의 색
<Vertical time 수직적 시간>(2023)에서 현대적 미감을 끌어안는다. 작가는 (the color of mind and wavelength)’이 자리한다. 청화(淸化; 푸른물결의 담
노이즈와 시그널의 조화 속에서 부드러운 평면을 날선 에너지로 교차시킨 ‘상 화)로 물든 ‘선비의 연적’처럼 청색으로 꽉 채운 화면에는 물감이 서서히 올라
감청자’ 시리즈를 선보인다. 복잡한 단청을 단순화시키거나 한국 전통악기의 가며 잠식해 간 깊이의 흔적이 자리한다. 작가에게 청색은 세상과 통하는 창(
‘엇박자=혼종의 가치’에서 영감을 얻어 소음과 같은 미세함조차 작품의 주인 窓)이다, 우주와 존재를 연결하는 블랙홀과 같이 ‘깊은 푸름’은 심연을 쌓아가
공이 될 수 있다는 ‘동화(同化)’의 마음을 담는 것이다. 특히 청자의 기본 기법 며 새로운 가능성의 길을 연다. 유화지만 묵화 같은 농담濃淡의 표현은 수 천
사이에 백토(白土)나 흑토(黑土)를 감입해 만드는 기법인 ‘상감청자’에의 감화 년의 역사를 머금은 동양화의 푸른 먹을 연상시킨다. 면(面) 그림 중심의 서
는 ‘시그널을 바탕한 노이즈’의 개입이라는 독창성과도 연결된다. 양화에선 느낄 수 없는 질료의 한계를 넘어서는 탁월함, 조선시대 선비의 ‘시
화(詩畫)’를 연상시키는 푸름 속에는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충만한 에너지’
담백한 자유로움을 담은 분청사기의 태토로부터 정신상의 근원을 찾는 김근 가 아로 새겨져 있다.
태(~1953)는 “한국미란 자신의 심연을 자연과 연동시켜 모든 사물로 나아가
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분청자덤벙호(粉靑磁粉粧壺)>와 매칭된 작 한국미의 특징을 ‘문화의 레이어’로 해석한 이번 전시에서 전통도자의 원형 속
품 <2022-135>(2022)는 고려시대보다 검소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한 에서 현대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매칭한 것은 고무적이다. 전통과 현대의 세
수수하고 질박한 미감의 분청사기와 내면·외면의 심상이 유사하다. 회색의 태 련된 조화를 보여주는 시도를 통해 전시문화의 새로운 방향과 만나기 바란다.
토(胎土) 위에 백토(白土)를 분장한 분청자(粉靑磁)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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