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 - 전시가이드 2023년 06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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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  문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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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보도자료는  crart1004@hanmail.net  문의 010-6313-2747 (이문자 편집장)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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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동과 입자의 드라이브 2, 50×60.5cm, Acrylic on canvas, 2023  파동과 입자의 드라이브 3, 50×60.5cm, Acrylic on canvas, 2023





            삼킨 블랙홀 같은. 존재를 낳는 화이트홀 같은. 카오스 같은. 우연하고 무분별     얼룩을 만드는 타시즘이 모두 유동성 그러므로 물감의 흐르는 성질을 이용해
            한 생명력의 분출 같은. 파장 같은. 파동 같은. 파문 같은. 자연의 지문 같은. 풍  그린 그림들이다. 푸어링 혹은 플루이드 기법의 변주 혹은 변종이라고 해야
            경의 지문 같은. 존재의 지문 같은. 에너지와 에너지가 충돌하면서 잇대어진       할까. 물감의 성질이 유동적인 탓에 어떤 형상이 그려질지 알 수가 없고, 같은
            경계 같은. 이것들은 다 무엇인가. 볼 때마다 다르고, 아마도 사람들마다도 다     형상을 두 번 그릴 수 없다는 점이, 그러므로 매번 새로운 형상을 생성한다는
            른 것을 볼, 그림 속 형상은 다 무엇인가. 사람들마다 다른 것을 본다? 사람들    점이 특징이다. 생성 중인, 소멸 중인, 이행 중인, 그래서 반복이 없는(반복이
            은 저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인문학적 배경이 다르다. 그래서        없으므로 재현도 없는) 자연의 그것과도 통하는 성질이다.
            같은 것을 보면서도 사실은 다른 것을 본다.
                                                            작가는 이 그림을 <컵 속의 무한세상>이라고 불렀다.  컵 속에 세상이 담겨있
            작가의 그림은 자연을 그린 것인가. 아니면 자연성을 그린 것인가. 자연 철학      다? 세상이 컵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물감이 담긴 컵이 존재가 생성되는 근
            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피직스)과 자연성(나투라)을 구분했다. 감각적 자       원으로서의 점을 상징한다면, 물감을 쏟아내 일거에 만들어진 우연한 형상은
            연의 원천 그러므로 자연의 원인이 자연성이라고 본 것이다. 우리 식으로 치       하나의 점으로부터 유출되는 존재의 생성원리에 해당한다. 그렇게 컵은 세상
            자면 기라고 보면 되겠다. 기의 운행, 기의 운동을 감각적 형태로 옮겨놓은 것     이 유래한 점에 유비된다. 세상은 하나의 점에서 유래했다. 세상은 이데아로
            이 곧 자연이다. 작가의 그림은 아마도 그런, 기의 운행, 기의 운동, 그러므로    부터 유래했다(플라톤의 이데아 모방론). 세상은 일자로부터 유래했다(플로
            자연성을 그려놓은 것일 수도 있겠다.                            티노스의 일자 유출설). 세상은 로고스 그러므로 신의 말씀으로부터 유래했
                                                            다(기독교의 유일신 사상과 창조설). 기독교에서는 로고스를 신의 말씀이라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우주가 막 생성되는 태초의 순간을 보는 것 같다. 자연      고 부르고, 불교에서는 법(혹은 법문)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불교는 세상의 기
            의 우연하고 무분별한 생명력이 분출되는 극적 현장을 보는 것도 같다. 추상       원을 묻는 대신 세상의 환원을 묻는다. 만법귀일 일귀하처, 그러므로 모든 존
            과 형상이 경계를 허무는,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가 삼투되는, 감각적 실재와      재는 하나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 것인
            관념적 실재가 한 몸으로 섞이는 경계의 풍경을 보는 것도 같다. 형상에서 형      가. 여기서 존재가 유래한 점과 존재가 돌아가는 점은 하나다.
            상으로 이행 중인 풍경을 보는 것도 같고, 원초적인 풍경을 보는 것도 같고, 그
            렇게 세상의 모든 풍경을 보는 것도 같다.                         그렇게 작가가 그려놓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풍경, 비결정적인 풍경, 의미론
                                                            적으로 열린 풍경, 오묘한 풍경은 세상의 기원을 묻고 존재의 환원을 묻는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 형언할 수 없는 풍경, 비결정적인 풍경, 의미론적으로 열      예술은 질문의 기술이다. 그리고 선불교는 화두의 기술이다. 그렇게 우연이
            린 풍경, 오묘한 풍경을 도대체 어떻게 그렸을까. 사실 그림은 그렸다기보다       그린 작가의 그림과 예술의 기술이, 그리고 선불교의 화두가 하나로 통한다.
            는 그려졌다고 해야 한다. 그림이 그림을 그렸다고 해야 할까. 푸어링 혹은 플     그렇게 존재를 묻는 작가의 그림은 거대 담론이 죽은 시대에 새삼 거대 담론
            루이드로 알려진 기법으로, 정통 회화에서는 물과 기름의 반발 작용을 이용        (존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묻는)을 재소환한 것이기에 그만큼 더
            해 그린 마블링 기법, 물감을 흘려 그린 드리핑 기법, 물감을 흩뿌려 비정형의     의미가 있고 울림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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