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전시가이드 2023년 07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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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외로운 꿈  740x380  스테인레스 스틸, 브론즈  2023













                               2023. 6. 28 – 7. 15 장은선갤러리(T.02-730-3533, 운니동)









        복진오 초대전                                         방법이 엮음이다. 띠 혹은 줄을 엮어서 형태를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에 착안
                                                        한 것인데, 그러나 그 방식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탄성과 함께 날카로운 표면
                                                        질감을 가지고 있는 소재를 일일이 손으로 엮어서 지금처럼 원하는 형태를
        글 : 고충환(미술평론가)                                  만들 수 있게 되기까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노동집약적인 과정이 있었을 것이
                                                        다. 시행착오와 함께 지난한 형식실험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과
                                                        정이 뒷받침되어서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자유자재한, 자연스러운 경지를 보
        얽히고설킨 관계로부터 분절된, 파편화된, 일그러진 초상으로                여주고 있다고 해도 좋다.
        복진오는 평면이 아닌 입체로 구현한, 선을 이용해 허공에 그린 공간 드로잉
        이라고 해야 할까. 전통적인 조각의 본질이랄 수 있는 양감을 결여하고 있다       그렇게 작가는 스테인리스스틸 띠를 엮어서 사람 얼굴을 만들고, 몸통(토르
        는 점에서 탈조각이, 선으로 나타난 회화의 주요 형식요소를 빌려오고 있다        소)을 만들고, 해골을 만들고, 사물 형상을 만든다. 엮는 방식은 적어도 외
        는 점에서는 회화적인 조각이 실현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작가는 주       적으로 보기에 불규칙적이고 비정형적인데, 마치 무수한 비정형의 선이 모
        조(혹은 소조)로부터 선조로 넘어오면서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        여 형상을 만들고 볼륨을 암시하는 연필소묘에서처럼 베이스로 가지고 있
        다. 그렇게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기만의 형식을 찾고 있었다.               는 해부학적 지식을 믿고 감이 이끄는 대로 그린 것 같은(그러므로 만든 것
                                                        같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왜 엮음인가. 엮음에 무슨 의
        작가는 가녀린 구리 선을 뭉쳐서 형태를 만들었다. 주지하다시피 구리 선은        미라도 있는 것인가. 여기서 엮음은 관계를 의미한다.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
        유연하고 부드러워서 원하는 대로 형상을 만들 수가 있었다. 그리고 스테인        선 내가 있어야 하고, 네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나와 네가 어우러져 나를 만
        리스스틸 소재로 갈아탄다. 아마도 표면에서 번쩍이는 빛에 반응하는 성질이        든다. 무슨 말인가. 너와의 관계가 나를 만들고, 타자와의 관계가 나를 형성
        나 차가운 금속성의 질감이 구리 선보다 더 현대적인 소재라고 생각했을 것        시킨다. 후기구조주의에선 주체를 타자들의 우연하고 무분별한 집합이라고
        이다. 그러나 스테인리스스틸 소재는 탄성이 있어서 구리 선에서처럼 원하는        본다. 그렇게 작가가 빗어놓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타자와의 관계망으로 빼
        대로 형상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작가는 가녀린 실 형태가 아닌, 일정     곡하다. 여기서 나는 동시에 너이기도 하고, 주체는 잠재적인 타자이기도 하
        한 폭을 가진 가녀린 띠 형태로 자른 금속판(그러므로 금속 띠)을 소재로 하      다. 그렇게 양가적인 주체를 작가는 잊힌 초상이라고 부른다. 익명적인 초상
        는 것인 만큼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이겠지만, 그렇게 찾아낸      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누구랄 것도 없는, 그러므로 현대인의 초상이라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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