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전시가이드 2022년 04월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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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보도자료는  crart1004@hanmail.net  문의 010-6313-2747 (이문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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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은 동화적 색채로 가득하다. 그의 동화적 상상력 속에서 집은 단순히 벽돌과    뛰어넘을 수 있는 동화적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믿는 듯하다. 화자는 정해진
           시멘트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들 간 끈적한 관계와 의미가 생성되는      방식대로 현실을 이야기해야 하고 독자는 주어진 틀 속에서 정답을 찾아야 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한다.  특히  거주할  물리적  집이  있어도  진정한  소통이   기존의 낡은 재현방식으로는 그의 그림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다정하게 붙어서
           결핍된 유목민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에게 임현주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대화를 나누는 사물들 사이에서 누가 특정 이야기의 주인이며 그 이야기가 안과
           집은 단순한 노스탤지아를 넘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영혼을 따뜻하게 하는    밖 중 어디에 속하는지는 덜 중요한 문제가 된다. 오히려 오색으로 빛나는 집들의
           근원적 장소에 대한 그리움으로서 다가온다. 집이 기능적 또는 물질적 측면으로만    테두리는 각각의 집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결코 폐쇄된 공간의 닫혀있는 이야기로
           평가되는 세태를 비판하며 “파리에는 집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한 프랑스 철학자    끝날 수는 없음을 시사한다. 어떤 하나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달빛과 주변 사물의
           가스통 바슐라르(G. Bachelard)는 인간에게 집이란 내밀한 존재의 공간으로서   반짝이는 이야기와 상호작용하며 자라났고, 기찻길을 따라 무한히 안과 밖을 향해
           꿈과  몽상을  가능하게  하고  외부의  기계적  가치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곳이   뻗어 나갈 수 있는 열린 텍스트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이사하면 그만인 일회용 잠자리가 아닌 각기 다른
           개인의 경험이 자라날 수 있는 뿌리 이미지로서의 집을 염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 열린 스토리텔링의 중심에서 빈번하게 목격되는 것은 전통적으로 구전동화의
           작가의 캔버스마다 등장해 미로처럼 어디론가 이어지고 있는 계단과 골목길은       상징처럼 전해 내려온 엄마거위, 머더구스이다. 발터 벤야민(W. Benjamin)의 “
           우리  모두에게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보편적  경험을  선사한다.  저녁  무렵   이야기꾼”을 어김없이 연상시키는 (필시 작가 자신의 형상이기도 한) 머더구스는
           그림자와 어둠 속을 뚫고 걸어가야 하는 좁은 길은 문득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방팔방을 누비며 이야기를 물어 나르고, 구석구석 숨어있는 외로운 영혼들을
           고단함과 쓸쓸함, 잃어버린 시간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그 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발견하고, 그들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괴롭히다가도 아무도 들어 줄 것 같지 않은
           어느새 하늘의 쏟아지는 별빛의 안내를 받으며 어둠 속 불 켜진 창문으로 들어가    사소한 이야기에 말없이 귀 기울인다. 임현주 작가의 그림 속을 맴도는 머더구스를
           위로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오밀조밀 모여앉아 독특한 곡선을     보면서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에 등장하는 바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단지
           뽑아내고 있는 그림 속 집들은 몸을 쭉 내밀고 비틀며 저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시가 작가의 화실에 걸려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시 구절 속 “
           듯한 모양새다. 아무개야 어서 와 하면서.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바람처럼 그림
                                                          속 머더구스는 처음 보는 이에게도 무심한 듯 온 마음을 다해 환대하고 그들의
           신춘문예 당선 동화작가이기도 한 임현주 작가는 고정된 의미와 경직된 사고를      옆자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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