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전시가이드 2022년 04월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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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한만영_Reproduction of time-Bosch 1,   박항률_파랑나비, 45.5×37.9cm, 2021  신문용_Wave1921, 72×72cm, Oil on canvas, 2021
        117×90.7cm, 2019








                     2022. 4. 29 - 5. 12
             갤러리내일 (T.02-391-5458, 새문안로)








                                                               김홍주_무제, 91×91cm, Acrylic on canvas, 2013


       김홍주, 신문용,                                      본다.  어쩌면  작가도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성찰이 깊은 명상에까지 이르기를 희망하고 있는지 모른다.
       박항률, 한만영 展                                     또한  신문용  작가는  일찍이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미셀·라공은  「抽象풍경화」
                                                      라는 새로운 용어를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보통 생각으로는 서로 상충되는 이
                                                      두 낱말을 묶어 만들어낸 이 말은 언뜻 듣기에는 매우 생소하고 모순된 것처럼
       글 : 갤러리내일 제공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모순된  것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우리에게는
                                                      지극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풍경화가 사실적이고 서술적인 회화라는 것은
       김홍주, 신문용, 박항률, 그리고 한만영은 우리나라의 해방기를 전후하여 태어났고   두말 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사실성이 배제된 풍경화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1960년대  중반에  미술대학을  다닌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작가들로  전국의   것이다. 이 풍경화에 있어 자연은 엄연히 작품의 발상원(發想源)으로써 작품 속에
       미술대학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쓰다가  정년을  맞이한  뒤  자신들의   숨쉬고 있으며, 문제는 그 자연을 하나의 「감흥(感興)」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데
       예술세계에 대한 심화와 숙성을 지속해 나아가고 있다.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의 구체적인 정경은 자취를 감추고 범자연적(汎自然
                                                      的)인 호흡이 화면에 숨쉬게 되는 것이다. 신문용은 말하자면 이와 같은 계열의
       한만영 작가는 아름다움과 추함, 생성과 소멸, 채움과 비움, 그리고 생과 사는    화가이다.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한 요소의 순환 현상이다. 불이의 개념이 조형 언어의
       모태가 되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뒤섞어 놓고 실상과 허상, 구상과   김홍주 작가는 작품 화면에는 주로 세부묘사의 이미지들이 조밀하게 화면을 채우고
       추상,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하는 일련의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있으며 그러한 이미지들은 다시 거시적인 관점에서 글자의 형태가 되기도 하고
                                                      부감법적으로 그려낸 입체지도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작가의 세밀한 묘사작업은
       박항률 작가는 그림 전체를 관류하는 하나의 시선이 있다면 그것은 응시의 시선이    자기 안으로의 몰두이며 미세혈관처럼 화면을 구축하는 힘이 된다. 작가는 이러한
       아닐까. 그의 그림에서 사물과 사물이 서로 응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화면을  구사하기  위하여  몰입해온  창작과정의  결과물에  지속적으로  <무제>
       그림들은 서로 응시하면서 침묵한다. 서로를 고요히 바라볼 뿐 포옹하지 않는다.    라는  제목을  붙여놓음으로써  제목을  통해  의도를  전달하기보다는  관람자의
       그들은 서로 응시의 눈길을 통해 따스한 침묵의 대화를 나눌 뿐 이다. 이런 선경의   입장에서 작품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한 교감과 소통을 도모하고 작가의 개입을
       세계, 비경의 풍경을 통해 비로소 박화백의 마음속에 동심이 자리잡고 있음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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