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5 - 전시가이드 2021년 12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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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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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quilibrium#211007.115, 130.3x162.2 cm, 한지 및 혼합재료, 2021



                             2021. 12. 16 – 22. 1. 15 비디갤러리(T.02-3789-3872, 명동역 3번출구 앞)





             순백의 평면: 광활한 궤적이 부유하는 공간
                                                            색화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작업은 평면의 장을 넘어 건물 외벽과 같은 직
            김동형 초대개인전                                       접적인 대상을 거점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혹은, 얼핏 1980년
                                                            대 미국 화단에서 등장한 ‘네오 지오(neo-geo)’ 작가들의 실험성에 좀 더 맞닿
                                                            아 보이기도 한다. 하드에지와 같은 추상의 형태를 차용하면서도 당대 문화와
                                                            정서적 코드를 비평적으로 은유한 구상적 대상을 교묘히 엮어낸 접근법은 표
            글 : 함선미 (예술학, 미술평론)
                                                            층적인 연결성이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작가는 저물어가는 추상회화를 내부
            애써 무언가를 그리고, 애써 무언가를 지우는, 양면의 모순된 방식은 김동형       로부터 극복하려는 방향성을 보임과 동시에, 그 저변에는 70년대 한국 미술에
            작품의 근본적인 논리를 대변한다. 인간도, 사물도 세월 안에서 결국은 변화       서 이룩한 본질적 성정을 존중하듯 공존시키며 추상과 구상의 모호한 경계에
            하는 흐름이 있어 묘한 애틋함을 갖는 것처럼, 작품은 인위적인 것들 사이에       서 나름의 독자성을 취득하고 있다.
            서도 인력을 벗어난 자연적 변동에서 비롯한 이질적 상태가 나타나는 지점에
            주목하고 있다. 작가는 쉽사리 지나치고 말지도 모를 사소한 건물 외벽의 일       이처럼 그의 작품에서 순백의 표면으로 되돌리는 과정은 가장 주목할 만한 지
            부분을 박제하고, 그 안에서 저절로 새겨진 흔적에 주의를 기울이며 변화와,       점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동양화의 대표적 특성이기도 한 여백을, ‘지
            공존, 회귀의 연상(聯想)을 담담하게 그려내었다.                     우는’ 행위를 통해 현대적으로 재편하는데 여기에서 허실합일(虛實合一)의 의
            김동형의 작업은 건축물의 단면에 관심에 두고 시작한다. 마치 브루탈리즘         도를 읽을 수 있다.  결국 간결하게 완성한 순백의 평면은 광활한 궤적이 부유
            (brutalism) 건축의 일부분을 잘라낸 듯, 날 것 그대로의 벽면을 떼어낸 것처  하는 공간이 되었다. 추상의 끝나지 않은 게임을 다시금 시도하는 것처럼 보
            럼 보이는 익숙한 무늬의 단면이 주를 이루고 있다. 건물의 외벽과 내벽을 닮      이는 작가는 거시적인 사유들을 미시적인 시선들, 우리의 익숙한 곳에서 이야
            은 다양한 그리드(grid)가 정갈하게 배열된 회화 위에는 오랜 건물의 닳은 흔    기를 꺼내어 친근하게 전한다. 영겁의 세월 속에도 변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
            적처럼 부분 부분이 흐려지기도 하고, 때묻은 먼지가 덕지덕지 눌러 앉은 모습      는 이치가 존재하듯, 인간의 삶에도 문명 속에도 결국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
            처럼 마티에르가 두드러지기도, 때로는 질서 정연한 벽돌이 늘어선 화면 위에       적 숙명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삶이 받아들여야 할 것들에 초연해지는 과
            정적을 깨뜨리듯 흡사 금이 간 모습처럼 자유로운 선들이 가로지르기도 한다.       정이듯 작가는 작품 안에서 자리한 수행을 겸허히 이행하며 섭리의 벽을 차
            먼저 그의 작품을 처음 마주하면 1970년대 한국 미술의 대표적 경향이었던 단     분하게 세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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