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전시가이드 2024년 05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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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
                                                                                     t  문의 0
                                                                           t1004@hanmail.ne
                                                                                         10-6313-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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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수마감-매월15일  E-mail : crart1004@hanmail.net  문의 010-6313-2747 (이문자 편집장)
                                                           접수마감-매월15일


































                                 판-11.`93,Work-491,112x77cm,Litho.ed.10           판-16.`98,Work-818,112x77,Litho.ed.12






            는 엘리트주의적인 면모를 감수한다. 그의 작품을 대하면서 사진 같은 중간        해석이 있지만 마티스가 형상의 극단적인 대비, 즉 존재와 무를 통한 한 세계
            예술의 용이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또 디지털적인 감각을 찾아볼 수도 없다.      를 구성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새로운 상징적 행위로 상상해보자! 그러면 역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탐색에 열중한다.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은 그의         설적이게도 다른 두 세계를, 아니 더 많은 것들을 봉합(縫合)하는 예술/기술이
            수도사적인 기질과 불가분적인 관계를 지닌다. 확정된 진리보다는 수행 속에        보이는데 이것은 무의미한 것은 없다는 태도와 유기적인 세계관을 드러낸다.
            서 형성되는 이미지들이 그의 회화와 판화 그리고 ‘바느질 화’에서 드러난다.      여기에 전통적인 예술관에서 공예적인 것이거나 여성적인 것이라고 상대적
                                                            으로 평가되어온 방식인 바느질을 동등하게 다룬다는 의미는 지속적으로 그
            미메시스   유기적인 자연을 형상화하거나 혹은 자연에 대한 이해를 유기적        의 작업을 눈여겨봐야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존재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탐
            으로 파악하고 그것들을 단순화하는 것이 홍재연의 화면이다. 미메시스이          구가 탈역사적이라고 비난받을 소지가 있는데 작가는 서양미술사에 대한 이
            고 아날로그이다. 모방이나 재현과는 다른 방식인 추상으로 그 과정을 형성        해에서 그러한 오해를 받을만하다. 그런데 이에 대한 부드럽게 대응하는 방
            한다. 상당히 직관적이다. 개념적이라면 좀 다르게 성취될 소재들을 관계항        법(론)이 바느질처럼 보인다. 약간은 우주론처럼 보이는 화면을 이전보다 덜
            으로 성립시킨다. 별개의 것들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없(어 보이)더라도 방치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선사할 때 미학적 담백함을 느낀다.
            하는 방식이 아니라 작가에게는 모두가 의미 있는 것이다. 작은 점이나 선 하
            나에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들이 화면에서 얼마나 효과적인 것과는        연민   예술지상주의도 아니고 예술의 현실 반영론도 아니라면 예술작품으로
            다른 차원이다. 이미 생활과 작품을 이어주는 원리로서 미메시스가 작동한다        서 삶에 대한 관심이 홍재연을 사로잡은 것일까? 어쩌면 삶을 예술과 분리하
            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에게 회화적인 구상과 추상의 구분은 이미 초월       는, 다르게 말하면 추상하는 방식은 이러한 해석을 타당하게 한다. 그럼에도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은 존재론적 미학을 간직한다는 의미에서 상       작업 방식을 삶의 노동으로 여기는 태도는 다시 삶을 작품으로 통합한다. 그
            당히 형이상학적이다.                                     의 회화미학은 잘잘못을 따지는 경찰력이 아니다. 따라서 어떤 공권력의 태
                                                            도라기보다는 텔로스에 대한 성찰처럼 보인다. 궁극의 목적에 대한 분위기가
            담백   긋기와 칠하기로 이룩되는 세계에 바느질하기가 새로이 등장했다. 앙       화면에 존재한다. 사소한 것들에 대한 연민과 함께!
            리 마티스의 ‘오리기 ’를 떠올리는 것은 작가 홍재연에게 실례일까. 여러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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