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전시가이드 2022년 09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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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Trace 028, 1162×1112,  Acrylic on cnavas










        노련하게 운용한다. 있음과 없음의 작용(들숨과 날숨이 동시에 있는 순간)을       간섭은 작업이 제시할 때 드러난 여백의 울림이 증폭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느낄 때 물감을 떨어뜨리는 ‘자신만의 창작 기법’을 구현하는데, 이는
        작가의 드립핑 한 번이, 뛰어난 깨달음의 경지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정형의  얼룩들로  가득한  화면들은  우리를  압도하는  마법을  부린다.  색이
                                                        겹쳐지면서 드러난 은근한 여백들은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막막한 우주 속에
        점화 사이에 빛나는 ‘자연의 빛’                              우리 모두를 유영케 한다. 바닥을 알기 어려운 심연, 여든 생의 긴 추억들,
                                                        마치 신기루와도 같은 인생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의 다양한 지점들이
        드립핑 사이로 흐르는 빛의 여백은 신성과 인성을 아울러 마음을 직시하게         하나의  아우라로  남아  ‘창작을  향한  빛’으로  기능한  것이  아닐까.  작가의
        한다. 평면 캔버스 작업은 시간의 흔적들이 쌓여가면서 만들어지는데, 여기서       그림은 어쩌면 우리의 현실과 가상을, 어제와 오늘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빛은  상대성과  절대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태초에  신이  빛을  창조했기에,   가능성의 창을 열어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색채로 치환된 작품들은 빛과 더불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생명의 원형에서
        발현된 다양한 색감들은 이우섭의 작업을 통해 자연에서 쏟아지는 부드러운         이우섭의 생동시대(生動時代), “명상하며 행위하며”
        ‘빛의 질감’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르네상스 이후 신이 부여한
        빛이 예술가에 의해 구현된 것처럼, 작가의 색은 인상파 화가들이 발견한 빛과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는 부분은 드립핑과 행위와의 관계이다. 작가에게
        같이 재현의 시대 이후 추상의 시대를 이어간 ‘모더니스트로서의 작가정신’        드립핑은  생명의  흔적을  만물의  행위로  치환하는  것이다.  자신의  주어진
        과도  연동된다.  로젠버그  같은  화가들이  추구해온  숭고의  감정이  빛으로   공간에서  생명,  즉  살아있음은  작가와  세계의  공감  속에  연동돼  있다.  그
        이어진 것인데, 작가의 빛은 드립핑된 점화로 인해 자연스레 생성된 것으로        흔적들은  개별관계들의  공동영역이자  개인들의  긍정적인  웅성거림  같은
        이는  의도성과  비의도성  사이의  경계를  드러낸다.  작가는  외관상  색채가   느낌을 보여준다. 개성을 추구해온 작가에게 창작의 일 순위는 ‘자아(自我)’
        올려진 점화의 시선에 주목하지만, 그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우연한 빛의         이며, 아티스트로서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 중요한가를 끊임없이 반문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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