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 - 경기룩아트Vol.13
P. 5
특집_이달의 작가 www.klookart.org
양 서 가 화 mM ArtCenter에서 두달여 동안 선보인 그의 작품은 종이로부터 시작된 기억의 제2전시실 ‘그림의 시작과 이후’에서는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
기 시작한 시기의 초기 작품을 극사실 회화와 컴퓨터 페인팅 작업 같은
길로 감상자들의 심미감을 자극해 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대형 설치작품 ‘생명
의 나무’가 압도적인 규모로 눈길을 끈다. 볏짚을 밟고 지나 ‘생명의 나무’에 초기 작품들을 아카이브로 전시했다. 국내 화단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
도달하게 되는 그 어린시절의 기억은 바로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며 만들어지는 길 기 시작한 시기의 초기 작품과 함께 극사실주의에 몰두했던 초창기 그가
이다. 12m 길이로 대나무를 이어붙인 작품 군데군데엔 기다란 흰 종이가 매달려 그렸던 기차, 구겨진 종이 작품을 비롯해 컴퓨터 페인팅, 구김+찢기 작
바람에 나부낀다. 바닥에 깔린 볏짚으로 시작하여 “탄생과 죽음, 기쁨과 슬픔, 가 업으로 이뤄진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익숙히 알고 있는 그의 종이 작업
벼움과 무거움, 음과 양의 상대적 개념은 평행적인 위치에서 공존한다”는 작가의 이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며, 3층 뿌리의 방에 들어서면 무수한 ‘종이조
각’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지상을 이어주는 듯한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듯, 천강신화(天降神化)를 연상하게 하는 나무와
종이로 이루어진 설치 작업에서 우리는 탄생과 죽음의 순환 회로에 저절
최 필 규 ‘종이조각’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그의 조형적시도에 주목을 한
로 스며들게 되는‘종이’라는 매체의 의미를 넘어 평면으로서의 종이가
작품들이다.
제3전시실 ‘인생을 담고 시간을 담고 흔적을 남긴다’에서는 최근작
을 중심으로 자연과 시간에 대해 한층 깊어진 작가의 사유, 생명과 우주
에 대한 작가의 해석에 주목하며 감상 할 수 있다. 사실주의적 재현 화풍
과 토속 신앙의 정서를 함축한 최근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흔: 시간을
담다 2301’는 대칭 구조로 종이를 배열하고 방향성을 띄게 해 질서와
무질서의 리듬을 만들어냈는데, 이를 통해 작가의 조형 감각과 사색의 깊
이를 느끼게 한다. 어두운 방에 설치된 원형의 종이조각, 그리고 땅의 기
운을 상징하는 네 개의 구 안에 자리한 대나무 이미지는 “천기(天氣)와
지기(地氣)가 만나 생명력을 찾는다는 고대인들의 생각을 표현한 것으로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작가노트)”을 표현한다. 또한 벽면에 설
치된 서른 개의 뿌리 작품은 피고지는 자연의 순환에 대한 바람(wish)을
물질로서 보여 준다. 그리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무사안녕을 빌었던 소원
(wish)들은 나뭇가지에 붙은 창호지가 바람(wind)에 흔들리는 성줏대
의 영상 이미지로 남는다.
최필규 작가에게 기억은 과거의 주술적 경험의 이미지이자 시간의 흔적
이다. 대청마루에 걸린 성줏대를 조형적으로 받아들인 ‘종이조각’들은
오래된 기억의 조형언어로 작가만의 창작의 세계로 담론화하였다. 종이
를 겹쌓임하고 나열하는 작업이나 종이들 사이로 붓질을 한 작업 역시 어
린시절 보고자란 터줏가리에서의 기억으로 유추할 수 있다. 볏짚으로 이
사유를 반영한 듯 지상에는 우주를 상징하는 원이 무수한 종이 위에 자리한다.
엉을 엮어 쌓은 터줏가리는 농사를 관장하는 지신(地神)을 모신 곳간(庫
나오는 길 우측에는 오지리에서 촬영한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창호지 겹겹이 바람
間)으로 그 재료가 되는 볏짚의 기억은 종이의 겹침으로 혹은 거친 사선
에 흔들리는 영상 이미지를 재현해 놓아 작가의 끊임없는 실험 정신을 엿볼 수가
의 연필선이나 붓질로 표현된다. 종이의 결을 따라 찢고 구기고 흩뿌리던
있다. 어린 시절 평택 지역의 잦은 물난리를 경험했던 작가는 풍수해 없는 한해를
볏짚의 기억은 무의식적으로 새겨지고 ‘종이와 나무’라는 물질로 매개
기원하던 농촌의 향토적·토속적 정서를 작품에 의미화 했다. 생명의 나무는 1층
되어 평면, 입체, 설치등 다양한 조형언어로 다가갈 수 있도록 전시하고
전시실부터 3층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해 지상과 천상, 생명의 뿌리와 만물의 생장
있다.
을 상징한다. 특히 작품 바닥에 지푸라기와 호롱불이 켜진 창문을 놓아 전체적인
입체감과 자연주의적 감성을 더했다.
“오래된 기억 속 바람은 때때로 내 삶의 창가를 찾아와 맴돌며 스쳐갔다. 문득 저 멀
리 돌아가는 바람의 소리를 느끼던 순간, 내게 어떤 중요한 할 말이 있었던 건 아닐까
“오랜 기억 속 외할머니 집 대청마루엔 언제나 성줏대가 걸려 있었다. 겹겹이 찢긴 창호지가 소
궁금해졌다. 나는 구겨지고 찢겨진 종이 위에 그 아스라한 바람의 소리를 담아 보고자
나무 가지 끝에서 나부끼는 모습은, 평범한 바람이 아닌 신령스러운 먼 세상의 기별인 듯 느껴지
했다. 종이가 가진 물질성과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시간의 축적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곤 했다. 온종일 뛰놀다 지쳐 돌아와 대청마루 한가운데 걸린 종이들의 부대낌을 오래 바라보곤
보고자 종이의 겹쌓임 작업을 이어나갔다.”
했었다.” -2023 최필규 작가노트중-
-2023 최필규 작가노트중-
제1전시실에서 선보이는 ‘종이가 바람이 되어’는 작가가 어릴 적부터 접해 온
무속의 의미를 담았다. 자연과 함께 순환하는 인간의 바람을 작가의 관점으로 평
면 작업과 대나무 오브제 설치 그리고 종이 작업을 통해 보여준다.흑과 백의 배경
에 바람에 나부끼는 종이를 그린‘흔:시간을 담다23-1’ 등의 각종 평면회화와
참고자료----------------------------------
오브제 설치작품을 감상 할 수 있다. 나아가 실제 나뭇가지를 캔버스 속에 들여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topic/detail/2385
거나 종이가 겹쳐지는 조각적 요소를 표현해 오면서 사용한 일관된 소재는 바로
경기일보기사. 50여년 몰두한 ‘종이’ 작업. 최필규 기획 초대전 ‘종이가 바람이 되다’. 김보람
‘종이’이다. 조형미는 물리적 깊이를 만들거나 종이의 질감을 표현한‘평면 오
2023. 최필규전시서문. 최필규 - 종이가 바람이 되다. 김연희(예술학박사,미술비평)
브제’로서 물질과 이미지의 관계에 작가의 감성을 더하여 감상 할수 있도록 한
주간평택(http://www.weeklypt.co.kr)장욱진초상드로잉(김정화백 기증작품집)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