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전시가이드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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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이드 쉼터


        멈춰야 산다


        글 : 장소영 (수필가)





































        나는 김포자다. 올해 김장을 그만 두었다. 가족 수가 줄어들어도 때가 되면 시     엔 ‘입동이 지나면 김장도 해야 한다.’는 말처럼 북에서 남으로 김장전선이 내
        기에 따라 마늘을, 고추를 구매하며 김장을 해왔었는데 올해는 두 눈 꼭 감고      려온다. 그 끝인 남도의 김장은 12월 초나 되어야 시작된다.
        포기선언을 해 버렸다.
                                                        김장철이 되면 배추나 무와 같은 채소류와 젓갈 판매량이 크게 늘어난다. 핵
        막 버무린 김치를 나누어 먹는 재미도, 냉장고에 김치 통을 꽉 채우면 올해       가족화를 넘어선 1인 가족화, 도시 아파트 인구 증가, 식단의 서구화로 김치
        마무리를 다했다는 만족감도 알지만, 올해는 멈춰야 했다. 시부모님 생전에        소비가 줄었다. 그리고 김치냉장고 보급과 보관기술 발달, 비닐하우스 재배로
        는 70~80포기 김장도 혼자서 너끈히 해냈었고, 30포기, 20포기, 점점 줄어   사시사철 김치를 담글 수 있게 됐다. 여기에 공장표 김치가 가세한 오늘, 김장
        든 김장은 김치 담그기라 과소평가할 만치 익숙한 고수가 되었지만 이젠 어        의 필요성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아직도 남도에선 올해도 많은 집들이 손수
        쩔 수 없는 상황이다.                                    담은 김장김치를 먹기 위해 김장을 하고 있다.

        제대로 돌보지 않고 굴린 몸뚱아리가 이젠 쉬어가자며 내게 빨간 딱지를 붙였       우스갯소리로 ‘가구 수만큼 가짓수가 많은 것이 김치 맛’이란 말도 있지 않
        다. 앉아 있거나 걷는 시간이 좀 길다 싶으면 응신하게 아려오는 허리 통증에      나?‘ 지역마다 집집마다 개성이 존재하는 것이 김치 맛이다. 본인들이 먹고 자
        도 매번 그러려니 해왔더랬다. 그런데 맙소사, 90대의 뼈 상태란다. 의사의 심    란 김치를 맛보려면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고 재현하기 위해 직접 김장에 참
        각한 표정과 체크지의 숫자를 보며 눈앞이 아득해졌다.                   여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골다공증으로 진단받고 나서부터는 나름 여러 방법으로 노력을 해        절여놓은 배추를 구매한 게 아니라면, 숨을 죽이고 씻기까지의 과정이 가장
        왔음에도 좋아지기는커녕 악화되기만 해왔고, 결국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         손이 많이 가고 힘들다. 설령 이 과정을 생략한다 해도 믹서기로 온갖 재료를
        다는 통보를 받고야 말았다. 자칫하면 남은 생을 누워서 지낼 수 있다는 의사      갈아내노라면 고막에까지 피로가 밀려온다. 육수를 끓이고 각종 소로 쓰일
        의 경고가 더 이상 주의를 주려는 과장이 아니란 걸 아니 덜컥 겁이 났다. 이     채소를 다듬고 씻고 써는 절차를 거쳐 젓갈, 고춧가루 등을 붓고 뒤섞는 작업
        제라도 살살 몸을 돌보며 건강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소망을 담아 김장부        은 중노동이다. 이렇게 준비된 양념을 배추에 버무리고 보관하면 김장이 얼
        터 포기하기로 했다.                                     추 마무리 되는데, 뒤처리 역시 만만치 않아 어깨며 허리며 앓는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봄이면 화려하게 피고 지는 벚꽃전선이 남에서 북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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