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2019년02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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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there season-spring2, 75×75cm, acrylic on canvas, 2018  overthere 채움, 65×65cm, acrylic on canvas, 2018












            면 정인숙 작가는 흘러가듯 색을 덧입힌 다음 흘려 내보내듯 사포질해서 쌓여       한 번의 덧칠이 잘못되었을 때 작품 하나를 포기하고 다시 그려야 하는 작업
            있는 색을 깎아내고 있기 때문에 나와 마찬가지로 변화를 이야기하는 작가다.       인데 작가는 도무지 포기를 모르고 과감하게 붓을 들어 감정을 흘려보내고 있
            나는 과학으로 작가는 예술로 변화를 노래한다. 수십 번에 걸친 덧칠과 그보       다. 무엇이 정인숙을 독한 여자로 만들었을까? 완숙미만으로 표현할 수 있을
            다 더 많은 사포질 덕분에 쳐다볼수록 다양한 색이 우리에게 속삭인다. 도저       까. 세상을 향해 온몸으로 목소리를 내고 싶은 열정이 피어오른 것은 아닐까.
            히 사회과학이 흉내낼 수 없는 경지다. 그렇게 남아 있는 색은 역사를 품고 있     이런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OVER THERE Blue Red Gree 시리즈 작품
            다. 이 색의 역사는 이야기가 되어 우리에게 속삭인다.                  이다.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작은
                                                            네모 박스에 그려내고 있는 듯했다. 이런 일상은 놀랍게도 확 바뀌는 배경 색
            투병 중인 어머님을 떠 올리며 그렸다는 작품 OVER THERE 향수 2 부유하지   과 무관한 모습이다. 마치 환경 변화가 심해지고 있지만 나하고는 상관없다는
            않은 집에 시집와서 삯바느질하며 자녀를 키운 평범한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        듯이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아닌가.
            이 숨겨있다. 말주변 없는 어머님이 툭 터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소
            중한 말벗인 계절이 사계절의 옷으로 함께하고 있다. 따스한 봄비를 흩날리며       작품 OVER THERECity #2에서 나는 덧칠 기법의 정점을 느꼈다. 가장 밑바닥
            위로해 주는 수줍은 봄도 있고 호호 손을 불며 온 가족이 고구마를 까먹는 모      에 깔린 색은 무엇일까?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옥을 연상하는 시꺼먼 색이 있
            습을 매서운 추위로부터 지켜주는 의젓한 겨울도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       을 법한데 그 위에 덧입혀지는 색들은 이 검은색과 투쟁을 벌인다. 세상은 그
            길을 끄는 대목은 가장 눈길을 안 받으려는 쪽문 같은 오른쪽 사각형이다. 이      렇게 단선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며 세상을 검은색을 기준으로 바라보는 시
            제나 오나 저제나 오나 걱정하며 마당에 잠시 들린 바람에도 빼꼼 문을 열어       선을 부정한다. 하지만 작가는 계속 덧칠해야 했다. 그 이유는 그만큼 검은 세
            내다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숨겨있다.                             계는 강렬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옥 같은 세상을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연
                                                            옥으로 만들었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만드는 공간을 창조한 것이다.
            작품 OVER THERECity #2는 남성적인 강렬한 붓 터치와 화려한 색이 조화를
            이룬다. 마치 2~30대 젊은이들이 70년대 유행가에도 어색하지 않게 노래에      작가는 왜 덧칠을 반복했을까. 어쩌면 더러움을 정화하고 힘들고 지친 감정을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다양성이 용광로처럼 넘쳐나는 클럽을 연상시킨다. 이       위로해 주기 위해 덧칠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작품 OVER THERE #5 #6 이 그
            런 클럽에는 머리 허연 내가 가도 어색하지 않으리라.                   런 작품이다. 덧입히고 덧칠하면서 작가가 보여 주고 싶은 것은 희망이고 위
            확실히 이전 그림보다 덧칠이 과감해졌다. 그런데 작가는 왜 갈수록 덧칠을        로가 아닐까. 강렬한 색채로 나를 드러내야 승리하는 경쟁 세계에 정인숙의 색
            고통스럽게 반복했을까? 무엇을 감추고 싶었을까? 작품 OVER THERE 향수     채는 강렬하지 않다. 모든 것을 받아주기 때문에 바다라고 했던가. 바다와 같
            1에서는 복주머니가 밑그림에 있다고 하니 소중한 것을 감추려는 것일까? 하       이 모든 색을 받아 줄 준비를 하고 있다. 나의 어떤 색도 어울릴 수 있는 세계.
            지만 정말 감추려고 했다면 아예 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소중한 것을      그래서 위로가 된다. 그렇게 덧칠해서 남아 있는 색은 역사를 품고 있고, 이 색
            알리고 싶어서 감춘 것일까.                                 의 역사는 이야기가 되어 우리에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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