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5 - 전시가이드 2021년 05월호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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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바다풍경13-8, 87x132cm, 한지에 목탄채색, 2013 말과 가족18-4, 66x43cm, 한지에 목탄채색, 2018
획이 확실한 국내 예술계의 풍토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주변에서 반 며 주목을 받았다.
대가 많았습니다. 나중에 대학에서 강의하기가 어렵다며 교수님들이 말리기 “요즘 제가 쓰는 기법으로 완성해서 처음 출품한 작품이었습니다. 전통 장지
도했습니다. 하지만 제 본능대로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본능’이라는 기법의 투명하고 담백한 느낌을 살리면서, 인물화를 통해 현대적 느낌과 사유
말로 압축해 표현했다. 학벌과 자본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본능대로 살 를 담아내고자 애썼습니다.” 한지로 유명한 원주에서 직접 한지를 구입해 서
기란 지난한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양화에서 사용하는 목탄으로 밑그림을 그린후 채색하는 그의 작품은 ‘서양화
같은 한국화’, ‘한국화 같은 서양화’의 느낌을 준다.
“대학 때부터 평생 작품에만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을 팔아
서 독립생활이 가능한 작가가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힘들었지만 그 다짐을 지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그의 이러한 작품세계를 두고 “임만혁은 전통이나 외래
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의 다짐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 사조에 주눅 들지 않은 자유로운 사유로 인해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끌게 한다.”
는 버팀목이 되었다. 서양화를 전공하던 학부 시절, 그는 일 년이라는 긴 시간 며 “전 세대의 작가들이 전통이나 외래 사조에 짓눌려 제대로 자신의 조형세
을 몽땅 쏟아 부어 극사실화 한 점을 완성해보기도 했다. 한국화를 전공하던 계를 펴 보이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그의 동 서양화를 아우르는 조형의 진폭
대학원 시절에는 신사임당이 초충도를 그릴 때 사용한 기법을 체득하기 위해 은 이 시대의 하나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라고 평가했다.
두세 달의 정성을 쏟아 그림 한 점을 완성해보기도 했다. 다른 화가들이 백 대
접 정도의 물을 사용할 때 그는 신사임당의 기법을 따라 이백 대접 이상의 물 인물화 위주의 그의 그림은 ‘가족’과 '바다‘가 주된 테마를 이루고 있다. 이 두
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개의 테마는 각각 독립되어 그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섞여서 표현되기도 한
다. “어렸을 때부터 바다를 보고 자라서 바다는 그냥 당연히 있는 풍경이었습
“고등학교 2학년 재학시절, 학교에서 단오 때 신사임당 그림으로 퍼레이드를 니다. 그런데 칠 년 동안 서울에서 자취하던 시절, 날마다 자취방에 고향의 바
하는 행사를준비하면서 처음으로 그녀의 작품을 모사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다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새로이 바다를 ‘발견’한 뒤 갈색톤으로 표
그녀의 작품을 여러 번 카피하면서 기법을 배웠습니다. 요즘 제가 쓰는 기법 현되는 그만의 바다를 그려냈다. 고단했던 서울 생활을 접고 다시 고향에 돌아
의 원형이 그때 만들어졌습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관념적인 그림이 아니 왔을 때 그가 짐을 푼 곳도 늘 바다를 볼 수 있는 주문진이었다. 그는 이 바다를
라며 웬만한 화가의 작품보다 뛰어난 ‘국보급 그림’입니다.” 자신의 ‘본능’대로 그려내면서 서울에서의 절망을 극복하고 화가로서의 입지도 굳히게 되었다.
서양화와 한국화를 접목한 그의 화풍은 2000년 동아미술제에서 대상을 받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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