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전시가이드 202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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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콘티니 화랑주 부부와 우의를 다지는 마놀로 발데스






            나 잡지 등을 이용한 콜라주 기법 등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옛 스페인 국왕이      별전시를 선보인다. 2020년 세종문화회관 야외 공간 큐레이팅의 일환으로
            나 영웅적 인물의 초상화를 팝 아트의 기법을 이용해 비틀고, 야유하고, 그 권     진행되는 이 설치작품은, 스페인어로 주로 여름에 쓰는 여성용 밀짚모자를
            위주의에 대해 침을 뱉고 풍자했다. 이윽고1971년부터는 국민을 억압하는 경      뜻하며 파리의 ≪방돔 광장≫과 싱가폴의 ≪가든 베이≫, 뉴욕의 ≪보태니
            찰 집단에 대한 일련의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고, ‘느와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컬 가든≫을 비롯한 전 세계의 유수한 명소에 설치되었던 작품이다. ≪세종
            작품으로 어둡고 공포가 가득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기도 했다. 마침내1975      문화회관≫과 ≪오페라 갤러리≫의 공동 주관으로 마놀로 발데스의 대형 알
            년 프랑코의 사망은 오랜 철권 통치의 종결이자 【에퀴포 크로니카】의 정치사       루미늄 조각 작품을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위에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무료
            회적인 작품 활동에서 중요한 동력이 사라져 버렸음을 의미한다. 이후 동지들       로 진행된다. 이번 야외 전시의 미래지향적인 관점에 대해서 ≪세종문화회관
            은 한동안 칠레의 정치적 상황을 다룬 작품으로 정치비판의 무대를 라틴 아메       ≫ 운영진 측은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허브의 역할을 담당하는 세종문
            리카까지 넓혀 나가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1981년 라파엘 솔베스     화회관이 앞으로도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시민
            가 사망과 동시에 구심점을 상실하게 되면서 종내 【에퀴포 크로니카】는 해체       들의 공감대를 얻는 전시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언제는 우리 미술생
            되었다. 이후 수많은 미술비평가들이 “에퀴포 크로니카의 역사는 스페인 독재       태계가 외부의 변수로 인해 갑작스레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유난스레 변화의
            정권의 역사와 궤를 같이 했다”고 찬사를 던지면서, “에퀴포 크로니카의 해산      의지를 불태웠던 적이 있었나. 하기야 돌이켜 생각해 보면, 국·공립미술관의
            은 민주정부가 들어선 순간 비판 대상이 사라진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       수장이 바뀔 적마다 항상 ‘위로부터의 개혁’을 부르짖어 왔던 것 같다. 그럼에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 이후로는 시각적 경험의 축으로서 이미지의 시대       도 불구하고, 설령 그 알량한 약속마저 얼마 못 가 공허한 메아리로 공중 분해
            를 초월한 작품을 선보이면서 “독창적이고 기술적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항상        되어 사라져 버릴지라도, 당장에는 그 달콤함에 ‘혹시나’ 하며 귀를 기울이게
            신선하고 도발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평을 받아왔다.                   된다. 단지, 여태껏 공공장소의 대중적 활용에 대해 인색하기 그지없었던 미
                                                            술정책가들의 작은 횡포가 하루 아침에 날아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느닷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국내의 대부분의 전시회가         없이 너그러워진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손치더라도 진정한 미술인이라면 ‘역
            취소 또는 연기되는 추세이다. 그런 가운데, ≪세종문화회관≫은 6월 28일(      시나’ 하면서 포기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랠 뿐이다. 바야흐로 우리 모두가 역
            일)까지 한국·스페인 수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      경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새로운 정신’으로 환골
            살아있는 피카소라 불리는 작가 마놀로 발데스의 설치작품『라 파멜라』의 특        탈태 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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