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전시가이드 202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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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과 방독면으로 무장하고 그라인더와 샌딩머신 등의 장비를 갖추고 금속평
판과 대면하여 보석을 채굴하듯이 거칠지만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을 수행
하여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빛나는 결과물들을 얻어낸다. 그렇게 얻어진 풍
경들은 일상 속에서 오랫동안 작가의 의식을 떠돌다 일거에 금속판의 표면 위
에 정착되어 구체화된 이미지들이다. 그 짧은 작업시간은 그러므로 그녀가 겪
어온 모든 시간들의 층위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함축적인 시간이다. 그를 위해
작가는 자신이 포착하고자 맴돌던 의지 속에 움터온 여러 층위의 이미지들을
일순간에 재배열하여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세계의 혼돈을 자신만의 방식으
로 정돈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비정형인 상태로 작가의 의식을 떠돌던 이
미지들은 구체적인 색과 형의 모습을 갖추고 외부로 나타난다. "나타남"은 어
딘가에 있던 무엇인가가 어떤 계기를 통하여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
로 거기에는 이미 예비하였던 부분과 나타남으로써 보이는 결과 사이에 그것
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자리한다. 이 사건은 작가의 포화된 의식을
끌어올리는 건곤일척의 작업으로서 작가는 보조 장비들을 총동원하는 집중
적인 작업을 통해 이 순간을 한꺼번에 의식의 화면위로 낚아 올린다. 따라서
작가로서 그녀의 작업은 일견 거친 행위를 동반하지만 그것은 충만하고 엄중
한 일종의 의식(儀式)과도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작가에게 소환되는 새로운 풍경들에는 멀리 꿈속에서처럼 알
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과 영혼을 순식간에 빨아들일 것만 같은 이상한 늪지대
Shape3, 162.0×130.0cm, Scratch & acrylic on copper plate, 2019 에 혼령처럼 서있는 나무들 위로 내리치는 번개와 천둥, 그리고 문득 번쩍이
는 빛의 다발들이 있다. 빛들은 색채의 풍경으로 가득 채워진 세계를 비집고
여기저기서 새어 나와 광채를 발한다. 이는 혼돈의 세계에서 문득 솟아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빛이다. 이렇게 화면을 뚫고 새어 나오는 빛은 자체의 힘에
의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것은 어둠이나 혼돈을 헤치고 밖으로 향하는 내
날이 번개처럼 할퀴고 지나가며 흔적을 남긴 표면을 통해 금속판은 자신의 물 적인 힘이다. 그 힘, 또는 빛의 근원은 어디일까.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내면이
성을 아주 잠깐 드러내어 보인다. 대개의 작품에서처럼 금속판 자체는 캔버스 자 동시에 질료가 간직하고 있는 숨겨지고 잊혀진 힘일 것이다. 그 빛을 준비
천과 같이 바닥에 묻혀서 풍경을 떠받쳐주는 보이지 않는 토대의 역할을 한 하기 위해 작가는 우선 천지창조와도 같은 혼돈의 카오스를 그려낸다. 그것이
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에서 이 철판은 이러한 기반으로서의 역할에만 그치지 때로는 구체적인 풍경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이 세계의 혼돈이 그러하기 때
않는다. 물감으로 덮여있는 표면을 뚫고 잠시 노출된 금속판은 극히 일부로서 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업에서 그것은 생성적인 혼돈이 된다. 많은 사람들
전체를 지배하리만치 충분하게 그 강한 물성을 드러낸다. 그러기에 작가는 최 이 혼돈의 시대, 혹은 혼란의 세계를 말하고 있지만 그녀의 혼돈은 더 높은 시
소한의 자국만으로 그 빛의 효과가 전면에 이르도록 그 영역을 제한하고 있으 야에서 바라보는 창조적인 카오스이다. 이따금씩 그러한 혼돈을 뚫고 올라오
며 이때의 금속이 내는 빛은 직선으로 이행하는 시간의 지루한 몸통을 단칼에 는 빛, 또는 광휘(光輝, éclat)는 앙리 말디네(Henri Maldiney)의 표현처럼 응
잘라내는 시간의 예리한 단면과도 같다. 고된 빛이 아니라 방사(放射)하는 빛이다. 그러한 빛은 안으로부터 새어 나와
밖으로 점점 환하게 퍼져가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바로 작업을 통해 작가가
그녀의 그림에서 색면(色面)은 그대로 풍경의 기층이 되기도 하고 비어있는 살고자 애쓰는 살아있는 빛의 시간이다.
공간적 여백이 되기도 한다. 서양화에서 공간은 오랫동안 형상의 구축을 위해
희생되어왔지만 추상표현주의와 색면추상에 이르러 그 회화를 구성하는 사 인류를 편의보다는 끊임없는 속도경쟁으로 다그쳐서 고단하게만 했던 산업
각의 창으로부터 스스로 솟아나는 자발적 공간으로 진화하였다. 이에 더하여 화 사회가 저물어가고 정보화 사회 또한 그 극점에 이르러 이제 인류는 5G 이
이정아의 공간은 바닥을 이루는 금속판으로부터 나타나는 빛의 효과를 과감 동통신 문명의 문턱에 와 있지만 세계는 그만큼이나 부정적 혼돈상태인 엔트
하게 차용함으로써 화면의 바닥과 표면을 하나의 평면에 아우르고 확장한다. 로피가 가속화되어 모든 것이 뒤섞이고 서로 간섭하여 점점 더 무채색의 비
이로써 그녀의 회화에서 공간은 물질성이 비물질성으로 이행하는 자리가 된 생성적 세계로 퇴행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아름다움이란 이러한 비극적 속성
다. 그것은 새로이 생성되는 살아있는 시간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색면은 아 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세계는 이미 고전적인 이야기구조나
크릴 스프레이 작업과 다양한 마티에르의 흔적을 드러내는 오브제의 사용에 최소한 평면적 회화가 획득한 인공적 통일성의 한계를 까마득하게 벗어나 있
의해 중첩된 공간으로 변이되어 준비되고 여기에 부분적으로 금속판에서 떠 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작가가 아날로그 장비로 무장하고 과감하게 캐어내는
오른 반사효과가 더해져 블랙홀과 같은 비물질적 공간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추상이기도 하고 익명의 풍경이기도 한 혼돈의 정경은 오늘날의 세계가 감추
효과들은 마치 히말라야 연봉이나 노호하는 심해의 장엄한 파도를 연상시키 고 있는 오만한 무질서에서 오는 비극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인
는 작품 등의 구상적인 요소에 적절하게 부가되어 그녀의 작업을 또 다른 세 다. 그래서 그녀가 사용하는 동판이나 니켈의 평판이 숨기고 있는 금속의 차
계로 끌어올려 보이지 않는 차원과 연접시킨다. 가운 물성으로부터 변용되어 나타나는 살아있는 빛의 시간은 내재된 물질의
실재적 힘을 가리고 있는 허영으로 가득한 가상의 현실에 틈을 내고 솟아오
작가 이정아는 그리고자 하는 풍경을 몽상으로 꿈꾸는 시간을 대신하여 방호 르는 신랄한 섬광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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